백제 부흥운동과 주류성

등록일 2002.10.22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주류성
복신
지수신
곡나진수
부여 융
백제 부흥운동과 주류성
1. 군간전장지(軍干戰場址)

본문내용

주류성은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개암사 뒤쪽에 자리 잡고 있다. 성에 오르면, 사방을 둘러보기 좋은 군사요충지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 이 고장은 백제에 속해 있었다. 신라와 같이 안정된 세력을 누 리던 삼국 중에 바다 건너 일본까지 글자와 문화를 전해줄 만큼 고도의 정신 문화를 가구했던 백네는 시조 온조왕이 나라를 세운지 678년, 왕의 통치기로 보면 31대 의자왕에 이르러서 나당연환군의 공격으로 한많은 역사를 지닌 채 문을 닫고 만다. 이 해가 서기 660년으로 의자왕이 수도 부여를 빼앗기고 연합군에 투항한 해이다. 그러나 주류성에서의 백제광복운동을 포함하여 백제의 멸망을 663년으로 발하는 학자도 있다. 유명한 식하자 안정북이 그의 저사 [동사강목]에 언급 하고 있거니와 천관우도 이에 따르고 있다. 주류성은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되는 과정에서 마지막까지 백제광 복군이 저항했던 역사적인 현장이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이미 한산지방으 로 알려져 왔으나 근래들어 부안에 위치했다는 설이 일부 학자 들에 의해 반 증되고 있어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다. 백제 멸망 당시 의자왕과 태자가 당에 투항하고 스스로 왕이 됐던 태자 또 한 항복을 하니 그것으로 백제가 멸망하는 듯 하였으나 나당연합군에 대한 백제광복군의 저항이 660~663년에 걸쳐 완강히 펼쳐 진다. 수도 부여가 함락된 직후 남잠성, 진현성, 임존성 등을 중심으로 아직 백 제군은 건재하고 있었고 좌평정무는 병정을 모집하여 두시원악을 거점으로 나당군을 치고 사비남쪽 고개를 택하여 항거했는데 신라의 태종 무열왕이 개 선하면서 소탕전을 벌인 것을 보면 백제군의 거점은 20여 성이나 됐다는 것 이다. 비교적 산발적이었던 저항이 구심점을 찾게된 이듬해 661년 1월에 일본에 머물던 왕자 풍을 왕족 복신과 승려 도침이 옹립하여 주류성을 거점으로 백 제왕의 이름으로 항전을 시작했다. 광복군은 부여를 완전 포위하고 연합군을 공격하여 타격을 주었으며 신라 가 상당 규모의 원군을 보내 반격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패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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