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당대 균전제의 모순

등록일 2002.10.15 한글 (hwp) | 1페이지 | 가격 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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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지난주 강의 중 당·송 변혁기에 대한 강의는 상당히 중요하고 그 의미 또한 크다는 생각을 자아내게 했다. 이 시대에는 사회·경제적 모든 전반에 걸쳐 많은 질적 변화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 중 토지제의 변화는 백성의 생활과 가장 관련이 깊고 실질적으로 그 영향 또한 크다고 볼 수 있다. 당초에 시행되었던 균전제가 사화의 문란과 난의 발생원인으로 까지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이며 양세법으로 바뀐 이유는 무었일까? 당나라 시대에는 지배체제로서 균전체제가 발전하였다. 그러나 토지제도로서 균전제는 그 속에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관료체제중심의 균전체제가 확대되어 감에 따라 관인 영업전을 비롯한 공해전, 직분전, 이 늘어나고 그 대상도 확대되어 토지의 수요는 크게 늘어남으로써 일반 균전민에게 돌아갈 토지는 부족하게 되었다. 관료에게 줄 영업전 조차 부족한 상황이 되었다. 이에 토지의 환수, 호내수전(戶內受田), 호등설정(戶等設定) 등은 이러한 눈앞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행되었지만 균전제의 근본적인 제도적 원칙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이에 따라 균전농민이 몰락하여 부곡(部曲), 객여화 되어 균전체제아래의 양천제라는 새로운 제도가 생겨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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