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수원'용주사'

등록일 2002.10.13 한글 (hwp) | 12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수원에 관한 레포트 쓸때 썼던 자료입니다.

목차

Ⅰ 머리말(들어가는 말)
글을 쓰면서

Ⅱ 용주사의 유래와 유물
1. 용주사의 창건
2. 가람의 구조
3. 용주사 유물
1)대웅보전 2)닫집 3)삼존상 4)삼세불 5)후불탱화 6)천불전 7)지장전 8)범종각 9)법고각 10)시방칠등각 11)불음각 12)삼 문 13)천보루 14)나유타료15)만수리실 16)성보문화재­어제 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 화산용주사상량문, 병풍, 금동향로, 청동향로, 동자상, 5층석탑

Ⅲ 용주사를 조사하면서 느낀점

♣참고자료

본문내용

수원에 대해 쓰려고 여러 자료를 찾다가 용주사에 대해 알게되었다. 서울에 살고 있어서 수원에 어떤 문화재가 있는지 잘 알고 있지 못했다. 알고 있는 문화재란 수원화성정도였다. 수원가이드 사이트에서 관광부문에 나와있는 용주사는 처음 들어본 사찰이었다. 수원이 효의 고장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왜 그런지는 잘 몰랐었다. 용주사란 사찰이 수원이 있었기 때문에 수원이 효의 상징이되었던 것이었다. 수원의 효의 고장이 되게한 용주사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본래 용주사는 신라 문성왕 16년 (854년)에 창건된 갈양사로써 청정하고 이름 높은 도량이었으나, 병자호란 때 소실된 후 폐사되었다가 조선시대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화산으로 옮기면서 절을 다시 일으켜 원찰로 삼았다.(1790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부왕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8일만에 숨을 거둔 사도세자의 영혼이 구천을 맴도는 것 같아 괴로워 하던 정조는 보경스님으로부터 부모은중경설법을 듣게되고 이에 크게 감동, 부친의 넋을 위호하기 위해 절을 세울 것을 결심하면서 경기도 양주 배봉산에 있던 부친의 묘를 천하제일의 복지라 하는 이곳 화산으로 옮겨와 현릉원(뒤에 융릉으로 승격)이라 하고, 보경스님을 팔도도화주로 삼아 이곳에 절을 지어 현릉원의 능사로서 비명에 숨진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호하고 그의 명복을 빌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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