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상 이야기
- 최초 등록일
- 2011.10.07
- 최종 저작일
- 2011.09
- 6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 본 문서는 한글 2005 이상 버전에서 작성된 문서입니다.
한글 2002 이하 프로그램에서는 열어볼 수 없으니, 한글 뷰어프로그램(한글 2005 이상)을 설치하신 후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소개글
박제상 이야기
목차
1. 박제상은 누구인가?
2. 5세기 초의 신라의 볼모에 관한 삼국사기의 기록
3. 박제상의 미사흔 구출과정에 대한 기록
본문내용
3. 박제상의 미사흔 구출과정에 대한 기록
<삼국사기 권 제45 열전 제5 박제상>
실성왕 원년 임인에 왜국과 화친을 맺을 때, 왜왕이 나물왕의 아들 미사흔을 인질로 요구하였다. 실성왕은 일찍이 나물왕이 자기를 고구려에 인질로 가게 한 것을 한스럽게 생각하여 그 아들에게 분풀이를 하고자 했기 때문에, 왜왕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그를 인질로 보내게 하였다. 또한 11년 임자에 고구려에서도 미사흔의 형 복호를 인질로 요구하여 대왕이 또한 그를 보냈다. 눌지왕이 즉위하자 변사를 구하여 그들을 데려 오기로 하였다.
제상은 드디어 빙례를 갖추고 고구려로 들어가서 왕에게 말했다. “제가 듣건대 이웃 나라와 교제하는 도는 성실과 신의뿐이라고 합니다. 만일 인질을 서로 주고받는다면 이는 오패만도 못한 것이니 실로 말세의 행위가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임금의 사랑하는 아우가 여기에 있은 지 거의 10년이 됩니다. 우리 임금은 척령이 들판에 있는 듯이 영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대왕이 고맙게도 그를 돌려보내 주신다면, 이는 마치 구우일모 격으로서 대왕에게는 손해될 것이 없으나, 우리 임금은 한없이 대왕의 유덕함을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왕께서는 이 점을 유념하여 주소서!” 왕은 “좋다”고 하면서 그들이 함께 돌아가는 것을 허락하였다. 그들이 귀국하자 대왕은 기뻐하고 위로하면서 말했다. “나는 두 아우 생각하기를 좌우의 두 팔과 같이 하는데, 이제 다만 한 팔만 찾았으니 어찌 해야 하는가?”
고구려는 대국이고 왕도 역시 어진 임금이었기 때문에 신이 한 마디 말로써 그를 깨우칠 수 있었지만, 왜인들은 말로써 달랠 수 없으니 속임수로써 왕자를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참고 자료
박제상 (朴堤上)과 5 세기 초 신라의 정치 동향 주보돈
『三國史記』ㆍ『三國遺事』 所載 `朴堤上 이야기`의 比較 考察
박제상 이야기의 수용 양상과 그 의미 엄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