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한일 관계의 열쇠, 칠지도
- 최초 등록일
- 2011.10.07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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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대 한일 관계의 열쇠, 칠지도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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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칠지도의 발견
2. 칠지도 제작 연대 논란
3. 칠지도 제작 이유에 대한 각양각색의 해석
4. 맺음말
본문내용
1. 칠지도의 발견
칠지도는 고대 한일 관계사에서 백제와 왜국 사이에 맺고 있던 특별한 관계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유물이다. 칠지도는 길이 약 74센티미터의 대형 창 모양 철기로, 날 양쪽에 가지가 세 개씩 어긋나게 솟아 있고, 그 날 앞뒤 넓적한 면에 금으로 상감한 명문 총 61자가 새겨져 있다. 바로 그 내용을 둘러싸고 한국과 일본이 날카롭게 맞서왔다.
칠지도를 발견한 곳은 일본 나라현 텐리시에 있는 이소노카미 신궁이다. 이소노카미 신궁은 고대 일본 건국 때 사용했다는 전설적인 칼을 모시는 큰 신사로서, 군사를 관장하던 모노노베씨가 관리하였고 야마토 정부의 무기고 역할도 함께 했다. 그 곳에서 칠지도를 발견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며, 그 경위는 한편으로는 대견하고 신비로우나, 다른 한편으로는 음습하고 은밀한 범죄의 기운이 느껴진다.
일본에서 한창 근대화를 추진하던 1874년, 칸 마사토모라는 사람이 이소노카미 신궁의 대궁사로 부임하였다. 국학을 공부하고『대일본사』편찬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그는, 신궁 창고의 겹겹이 봉인된 나무상자 속에서 이상하게 가지가 돋친 쇠창을 발견하였다. 그 쇠창은 전면에 두꺼운 쇠녹이 슬어 있었지만, 잘 보면 군데군데 금색이 어렴풋이 빛나고 있었다. 신궁의 물품 목록에는, 이 쇠창이 가지가 여섯 개 달린 투겁창이라는 뜻의 “육차모(六叉)”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원래 투겁창이란 창날의 아래쪽 끝이 나무 봉을 감싸면서 덮어 끼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창인데, 이 쇠창은 그렇게 생기지 않고 오히려 뾰족하고 긴 슴베(칼 등의 자루 속에 들어박히는 부분)가 달려 나무 손잡이에 꼽도록 되어 있는 걸로 보아, 투겁창은 아니었다. 그냥 창이거나 아니면 양날 검으로 볼 수 있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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