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 최초 등록일
- 2011.09.14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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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목차
1. 시대적 배경
2.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3. 스토아학파
가. 창시자
나. 자연학 (→우주학)
다. 윤리학
라. 요약
4. 에피쿠로스학파
가. 창시자
나. 자연학(신과 죽음에의 공포)
다. 윤리학
라. 요약
5.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의 비교 & 결론
본문내용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
1. 시대적 배경
독일의 역사학자 드로이젠(Johann Gustav Droysen)에 의해 학술 용어로서 사용된 ‘헬레니즘’은 크게 2가지 의미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넓은 의미의 헬레니즘은 헤브라이즘과 대비되어 일체의 그리스적 전통을 뜻한다. 반면 좁은 의미의 헬레니즘은 우리가 그리스로마 시대라고도 부르는 특정한 시기의 사상적 흐름을 가리킨다. 좀 더 자세히 표현하자면 좁은 의미의 헬레니즘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지중해 연안을 통일한 시기, 곧 아리스토텔레스의 죽음(기원전 322년)부터 서로마 제국의 멸망(48\76년)에 이르는 시기의 사상을 말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좁은 의미의 헬레니즘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로마 철학이라고도 불린다.
알렉산드로 대왕의 그리스 정복으로 헬레니즘 시대는 그 막을 열게 된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인더스 강에 이르는 정복 전쟁에 나서면서 수많은 도시가 새로 생겨났다. 알렉산드로스가 보기에 그리스인과 ‘야만인’을 엄밀하게 구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었다. 그는 도시국가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제국의 견지에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테네, 스파르타, 코린트 등은 더 이상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야만인들의 미개함에 대해 공동으로 느끼는 문화적 우월감으로 결속된 자유롭고 독립적인 단위체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이 시기에는 아테네와 같은 특정 폴리스가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아시아의 페르가몬이나 나일 강 하구의 알렉산드리아 같은 여러 곳이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나누어 가졌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그리스 도시국가의 사람들이었고, 이들에게 개인은 도시와 분리하여 생각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유로운 도시국가가 더 거대한 범세계적 전체로 통합이 됨으로써, 스토아주의의 관점처럼 개인주의뿐만 아니라 세계 시민이라는 이상을 지닌 세계주의도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