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가지 전투와 9.28.서울수복의 의미에 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1.09.12
- 최종 저작일
- 20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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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여기서는 한국전쟁 당시 양측의 상황(북한과 남한, 유엔군)과 치열했던‘서울 시가지 전투’상황, 서울 진공작전 계획, 서울 수복의 의미 등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총 6장)
목차
Ⅰ. 서 론
Ⅱ. 본 론
1. 양측의 상황과 작전계획
2. 미 제10군단의 서울 진공작전
3. 미 해병의 서울 시가지 전투
4. 한국 해병의 시가지 전투
5. 서울 수복과 환도식
Ⅲ. 결 론
본문내용
서울 시가지 전투는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적은 전세가 기울어지자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을 벌기 위해 시가지를 요새화하고 끈덕지게 저항했다. 서울 거리의 중요한 네거리마다 모래주머니로 쌓은 바리케이드가 구축돼 있었다.
그 전면에는 대전차 지뢰를 매설해 한미 해병대의 접근을 막았다. 좌우 건물 옥상과 2·3층에는 중화기를 배치했다.전차가 멀리서 그곳을 공격해 적을 퇴치한 뒤, 공병대를 투입해 지뢰를 제거해야만 네거리 하나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진격의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미 해병대의 강력한 화력 덕분에 돌파구가 뚫리기 시작했다. 25일 밤부터 시작된 마포전투에서는 엄청난 전과를 거뒀다. 이날 밤 미 해병1연대는 강력한 탄막사격을 가한 뒤 주력부대를 투입했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인 마포를 내주지 않으려고, 적은 약 700명의 병력을 집결시키고 박격포로 응사하기 시작했다. 결정타는 공중지원이었다.
미 해병 항공기들의 공습을 받고 흩어지기 시작한 적진을 주력부대가 추격하며 공격한 것이다. 공병대가 지뢰를 제거한 뒤 우리 해병용사들은 건물 내부를 수색해 잔적을 소탕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