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해방 후 남한과 북한 사학계의 역사 인식

등록일 2002.10.09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현재 국민대 명예교수님인 조동걸 교수가 쓴 현대한국사상사에서 발췌요약한 내용입니다.

목차

1.해방 후 남한 사학계의 역사인식
⑴남북의 분단과 1950년대의 역사인식
⑵1960, 70년대의 민족사학론
①식민주의사학 비판과 민족주의사학의 계승
②민족문화론
③내재적 발전론
⑶1980년대의 민중사학론
⑷1990년대의 방향모색

본문내용

1950년의 한국전쟁은 사회의 다른 각 분야와 마찬가지로 사학계에도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일제의 식민주의사학에 반대했던 민족주의 사학과 마르크스주의사학 계열의 역사학자만이 남았다. 그리하여 1950년대 남한 사학계는 냉전의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역사학의 이념이나 사관을 결여한 채 문헌고증의 아카데미즘만을 유지하게 되었다. 1950년대는 남북의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이념적·체제적 대립이 심각한 시기였다. 민족적인 사상이나 관념은 거부되었고, 대신 공산주의 이념에 대응할 수 있는 사상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이념이 도입되었다. 서구에서 발전해 온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원칙과 본질이 지켜진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념을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자유민주주의 이념과 대립되는 독재정치가 자행되었다. 이러한 한국의 정치·사회적 재편성은 미국의 세계체제의 편성과 밀접한 관련을 같는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복구사업에 경제적인 원조를 제공했고, 정치·사회적 제도정착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민족적인 것은 크게 위축되었다. 이런 정치·사회적 분위기는 50년대 사학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기본적으로 당시는 문헌고증사학이 학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제치하에서 형성된 식민주의사학에 대한 비판과 극복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러나 아주 미미하지만 그 발전의 가능성으로 보아 간과할 수 없는 신민족주의사학의 유풍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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