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춤
- 최초 등록일
- 2011.09.06
- 최종 저작일
- 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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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탈춤에 대해 잘정리되어있습니다.
사진자료 많습니다.
목차
탈춤의 정의
v 탈춤의 역사적 유래
v 상고시대
v 삼국시대
v 고려시대
v 조선시대
v 탈춤의 분포
v 북방계
v 중부계
v 영동계
v 남방계
본문내용
탈춤은 그 기원을 고대 제천행사에서부터 해 온 집단 놀이로서 조선조 앞에 그 형식을 구체화시켰다. 당시 지배계급의 모순 점을 갖은 해학과 풍자로 표현함과 동시에 피지배 생산 계급인 농민들과 한데 어울리는 가운데 노동 과정에서의 노고를 풀고 때론 지배계급에 대항하고 마을이나 개인의 안녕을 기원하는 하나의 연희 형태였다.
탈춤의 역사적 유래
탈춤의 역사
상고시대의 탈춤 : 원시적 종교의식에서는 탈과 춤이라는 이중의 주술에 의하여 초인간적 존재로 변모하려고 하며 종교적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고 강조하는 방법으로 탈과 춤이, 보편적, 필수적으로 사용 되었다.극적요소로서의 탈보다는 신격화로서의 탈의 기능과 그에 수반되는 춤의 행위를 탈춤의 기원으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의 탈춤
고구려
평양 부근에 남아있는 고분군의 벽화 중에서 안악 제 3호분 동수묘 후실의, 무악도에 있는 외국출신으로 보이는 무용수는, 탈을 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데, 고려사악지 삼국속악조에는 고구려악으로 기재되어 잇으나 당시 중국을풍미하던 서역악, 즉 악기 뿐 만 아니라 탈춤까지 섭취한 것으로 보인다.
백제
백제의 가악은 고려사악지에 선운사, 무등산, 방등산, 정읍, 지리산의 5종이 기재되어있고, 일본서기에는 서기 612년에 백제인 미마지가 오국에서 배운 기악을 일본에 전하였다 하는데, 기악에 사용된 7-8세기의 탈이 200여개나 일본에 남아 있다
신라
검무
이명, 황창무라고도 하는 검무는 처용무와 더불어 궁중에서 연희된 것으로, 신라 품일 장군의 아들인 관창이 전사한 것에서, 그 이름이 와전된 것이며, "신라의 황창랑이라는 7세 소년이 검무를 빙자하여 백제왕을 죽이고 피살되었으므로 이를 슬피 여긴 신라인들이 그 모습을 탈로 본떠 쓰고 그의 춤을 흉내내어 추었다." 는 유래를 갖고 있다.
처용무
처용무는 궁중에서 잡귀를 쫓는 나례의 중심 의식무이며, 궁중의 연락무로, 외국사신의 접대연에도 추어졌던 가면정재무이며, 왕조의 교체를 불구하고 신라로부터 조선조에까지 계승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