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랑생가답사기
- 최초 등록일
- 2002.10.08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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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1986년 2월 17일 전라남도기념물 제89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진군에서 관리한다. 김영랑의 본명은 윤식(允植)이다. 부유한 지주의 가정에서 자랐고, 1917년 휘문의숙(徽文義塾)에 입학,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고 '기미독립선언문'을 감추고 고향으로 내려와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나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대구경찰서에서 6개월간의 옥고를 치뤄야 했다. 출옥후 영랑시인은 고향에서 문학에 뜻이있는 인사들과 함께 '靑丘'라는 동인지를 내며 본격적인 문학활동에 들어갔다. 그 뒤 1920년 일본으로 건너가 청산학원 중학부에 다닐무렵 혁명가 박렬과 같은 방에서 하숙을 했었고, 귀국한 이후에는 평생의 지기(知己)인 龍兒 박용철 등과 교류를 하면서 최초의 동인지 '詩文學'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며 괴테, 로제티, 키츠 등을 탐독하여 서정의 세계를 넓혔다.
물론 전남 강진은 너무 멀어서 고민하기도 했다. 그 먼 곳까지 시인 생가 하나 보려고 혼자 간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부담스러웠다. 어찌 보면 시간 낭비, 돈 낭비라고 까지 생각했다. 솔직히 그래서 이번 리포트나 시험이나 다 때려치우고 그냥 다음 학기에 다른 교수님께 다시 재수강 할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난 관광경영학과...확실히 과 특성에 맞게 내준 리포트답게 정말로 답사를 갔다 온다면 나 자신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혼자서 기특하게 여행이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은 전혀 안 할 테니 이런 기회를 빌려서라도 한번 해보는 것도 좋을 거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혼자 가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다행히도 근처에 있는 다산초당에 가야 한다는 친구가 있어서 같이 가기로 해서 그 부담은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시인의 생가 찾아가는 답사이지만 일단 강진까지 가는 김에 다른 곳도 돌아보려 했으나...의뢰로 강진엔 유적이나 유물등이 있는곳은 없었다. 다만 은둔자의 낙향지 이거나 유배객들의 귀양지 였을 뿐이었다. 그래서 결국은 그냥 영랑생가와 다산초당만 가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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