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세사
- 최초 등록일
- 2011.08.20
- 최종 저작일
- 20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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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중세사에 대해 알아보자
목차
1.李資謙의 亂
2.妙淸의 亂
3.鄭仲夫의 亂
본문내용
1.李資謙의 亂
이자겸은 仁宗의 외할아버지인 外戚으로서 前代부터 외척으로 權力을 휘두르던 인주이씨 家門이다. 이자겸은 당시 유행하던 十八字姓이 王이 된다는 俗說을 믿고 국왕을 업신여기고 無所不爲의 막대한 권력을 휘둘러 專橫하고 국가의 重職에 자신의 일당들을 포진하는가 하면 백성들로 부터의 收奪을 자행하였다. 이에 만족하지 않고 나아가 왕위를 찬탈할 생각까지 품으며 反對勢力들을 處斷하고 인종에게 ‘知軍國事’의 지위를 요구하기에 이른다. 지군국사란 이자겸이 스스로 자신의 종신인 蘇世淸을 宋에 파견하여 表를 올리고 土物을 바치면서 스스로 자기를 일컫었던 名稱이다. 이는 국왕을 무시하는 행위로 고려의 국왕이 엄연히 存在하는데도 자신이 고려를 대표하는 대표자로 나선 일로 사사로이 外交를 행치 못하는 국제적 慣例로 보아 해괴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인종은 이러한 이자겸의 행위에 反感을 가지게 되고 이런 인종의 마음을 알아차린 內侍 김찬, 안보린과 同知樞密 지녹연, 上將軍 최탁, 오탁 大將軍 권수 將軍 고석 등은 이자겸 타도를 謀議하여 치밀한 준비 없이 경솔하게 척준경의 아우 척준신과 아들 척순을 제거하였다. 이러한 이들의 섣부른 행위는 결국 척준경의 분노를 사게 된다. 척준경은 윤관과 더불어 9성의 開拓에 큰 功을 세운 바 있는 자로 자신의 아우와 아들이 살해당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군사를 모아 軍器庫의 무기를 나눠주고 宮門을 포위하였다. 척준경의 이러한 행위는 결코 이자겸을 庇護하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없으며 단순한 증오심의 발로로 볼 수 있겠다. 결국 척준경은 왕이 직접 擧動하여 군사들에게 무기를 버리고 해산하라고 명령하는데도 군사들을 부추겨 왕이 있는 곳까지 화살을 날리고 궁궐에 불을 지르게 한다. 이러한 행동은 결국 척준경이 이자겸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지상의 탄핵을 받아 유배를 가게 되는 원인이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