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인의 생활상
- 최초 등록일
- 2011.07.31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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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스파르타인의 생활상을 알수 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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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Ⅰ. 스파르타
스파르타는 ‘라케다이몬’이라고도 불린다.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는 이 두 명칭이 구별 없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고전시대에는 ‘라케다이몬’은 도시국가의 정식 명칭으로, `스파르타`는 중심도시의 명칭으로 구별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는 도시국가를 일반적으로 스파르타라고 부른다.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반도 남부의 타유게토스와 파르논산 사이의 유로타스강 하곡에 위치하고 있다. 아크로폴리스 유적에서 미케네 시대의 도편(陶片)이 출토되었다. 또 에우로타스 하류에 아뮈크라이라는 옛 주거지가 있으며, 그 남쪽에 황금잔[黃金杯]이 출토된 바퓌오의 벌집형 분묘가 발견되었다. 이 점으로 미루어 스파르타는 미케네 시대에 이미 중요한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BC 1200년경 남하해 온 도리아인이 선주민을 정복하고, 그들을 헬로트(helots:國有奴隷)로 만들어 폴리스를 세웠다.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 중에서 특히 영역이 광대하고 비옥하여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였다. 스파르타에는 정복자인 자유민 스파르타인과 피정복자인 헬로트 외에 반(半)자유민인 페리오이코이가 있었다. 스파르타는 2회에 걸친 메세니아전쟁(제1차는 BC 736∼BC 720 또는 BC 725∼BC 705?, 제2차는 BC 685∼BC 668 또는 BC 640∼BC 620?) 후 메세니아를 병합하고, 그 주민을 헬로트로 만들었다. 이 전쟁을 통하여 토지가 소수에게 집중되고, 토지를 잃는 자가 증가하였다. 그래서 사회적 위기에 빠지자 토지의 재분배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설적 인물인 리쿠르고스가 이 토지의 재분배를 단행한 동시에, 부국강병을 지향하는 여러 개혁을 실시하여, ‘리쿠르고스 제도’라고 불리는 특이한 국가제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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