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답사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1.07.28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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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학기말 대체 리포트였구요, 국사학과 전공수업에서 A+받은 보고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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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경복궁 답사보고서
한국전통사회의 역사화 문화
이규철 교수님
어릴 적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아버지를 따라 전국 방방곡곡의 유적지를 다녀보지 않은 곳이 없었다. 책에서 보던 유적지와 유물을 직접 체험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역사를 배우는 기회를 가졌었던 내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단 한번도 가보지 못한 곳이 있었으니 바로 ‘경복궁’이었다.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차일피일 미루던 것이 지금까지 온 것이다. 드디어 2011년 5월 7일, 광화문을 그렇게 자주가면서도 가지 않았던, 덕수궁 미술관에 가면서도 가지 않았던 그곳 ‘경복궁’을 답사하였다.
이번 답사는 지난 번 개인 답사와 달리 교수님의 해설이 함께하는 답사였지만, 지난 번처럼 보고서를 위해 답사를 두 번 다녀와야 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사전 조사를 하기로 했다.
(경복궁의 역사)
경복궁이란 명칭은 《시경》의 ‘군자만년 개이경복(君子萬年 介爾景福)’이란 글귀에서 따왔으며, 1395년 조선 태조 때 건립되었다. 궁궐 명칭과 주요 전각의 명칭은 정도전에 의해 지어졌는데, 오문(광화문), 근정전, 사정전, 강령전 등이 그것이다. 이후 태종 때는 경회루를 조성하였고 세종 때는 광화문, 흥례문, 영제교 등의 문과 다리의 이름이 지어졌으며 경복궁에 새로운 전각을 짓거나 중수 하게 되는 등 법궁으로써 면모를 더욱 다져나갔다. 그러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은 모두 불에 타 없어지게 된다. 그 후로 무려 273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경복궁은 재건되지 못한 채 방치되다가 흥선대원군에 의해 1869년 재건되었고, 1895년에는 명성왕후가 일제에 의해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발생하였는데 이에 신변을 느낀 고종의 1896년 아관파천을 끝으로 경복궁은 궁궐로서의 기능을 다하게 된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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