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조선 사화
- 최초 등록일
- 2002.10.01
- 최종 저작일
- 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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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열심히 써서 A받았던 레포트 입니다~ ^^;
많은 도움 됬으면 합니다.
목차
1.무오사화( 戊午士禍 1498년, 연산군 4년)
(1)배경-사림파들의 빗나간 상황 인식
(2)원인-'사초'가 두려웠던 이극돈
(3)성격 밑 생각
2.갑자사화(甲子士禍 1504년, 연산군 10년)
(1)배경-후궁들의 세력 다툼
(2)원인-폐비 윤씨의 사사 그리고 훈구파 내의 대립
(3)성격 밑 생각
3.기묘사화(己卯士禍 1519년, 중종14년)
(1)배경-성급하게 추구한 이상 정치
(2)원인-중종을 윽박지른 조광조
(3)성격 밑 생각
4.을사사화(乙巳士禍 1545년 명종 즉위)
(1)배경-대윤과 소윤의 대립
(2)원인-소윤의 공작 정치
5.종합적 나의 생각
본문내용
1.무오사화( 戊午士禍 1498년, 연산군 4년)
(1)배경-사림파들의 빗나간 상황 인식
사림파는 성종 때부터 득세하기 시작하여 그 후반에는 성종의 전폭적 지지를 받으며 성장을 했다. 그들은 사림파는 썩었기 때문에 제거해야 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임금의 신임을 등에 업고 훈구파를 몰아 부쳤다. 이러한 그들의 공격은 연산군 즉위 후에도 계속 되었는데, 이것이 사림파들이 상황을 잘못 판단한 것이다. 연산군은 성종과 달리 사림들에게 호의 적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훈구 세력들에게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림들을 몰아낼 배경을 주었던 것이다.
(2)원인-'사초'가 두려웠던 이극돈
무오사화의 직접적인 원인은 김일손이 썼던 사초였다. 김일손은 자신의 사초에 훈구 대신인 이극돈의 비행을 기록했는데, 이것을 안 이극돈은 그 사초를 실록에 넣지 말라고 부탁을 한다. 하지만 김일손은 그것을 거절한다. 이에 불만을 품은 이극돈은 김일손의 사초를 자신의 비행이 아닌 다른 내용을 갖고 비판을 가한다. 그것은 김일손이 세조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글을 썼다는 것이다. 이것을 연산군에게 알리자 연산군은 국문을 시작한다. 훈구 세력들은 이것이 사림들을 몰아낼 기회라고 생각하고 김일손의 배후가 있다는 주장까지해 김종직을 그 사건에 연루시킨다. 이것이 무오사화에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김종직이 쓴 '조의제문'역시 세조의 단종 폐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