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 삼별초

등록일 2002.09.29 한글 (hwp) | 3페이지 | 가격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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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일본 동경대학에 '고려 찹장 분심 조조'라는 고문서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통해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이는 고려가 진도로 천도했다는 것과 고려의 몽고에 대한 태도 변화가 쓰여져 있었던 것이다 즉 몽고를 덕으로 칭송한데 반해 오랑캐로 표현이 되어 있었고 군신 맹세를 한 관계에서 오랑캐 풍습이라고 비하하였다고 쓰여진 부분이다. 강화에서 개경이 아닌,,,진도로 천도를 했다고 했는지,,,이를 의문점으로 제시하고 이를 밝히려 했다. 이는 곧 또하나의 고려라 할 수 있는 대몽항쟁을 위해 끝까지 살아 남으려 했던 ,,자주 독립국으로서의 삼별초를 이해하는 것이다. 우선 삼별초의 문서적 단서로 고려사를 들수 있다. 삼별초는 야별초의 확대로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누어진) 반몽집단이라 나타난다. 고려가 몽고에 굴복했을 때 이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일본으로 외교문서를 보낸 것이다. 강화는 삼별초가 처음 난을 일으킨 지역이고 개경에서 강화로 천도하여 대몽항쟁의 중심지를 이루었다. 삼별초의 난은 원종 11년 6월 1일에 일어났다. 삼별초는 승화후온왕(원종의 6촌인 왕)을 왕으로 추대했는데 이는 고려의 명맥을 잇겠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알 수 있다. 삼별초는 관부를 설치하고 조직 체계를 정비하는 등 이는 새로운 정부 수립을 하고자 함을 알 수있다. 대몽항쟁을 위해 강화를 떠나 새로운 수도의 거점으로 진도를 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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