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명의 인조반정 인식과 조선의 대응

등록일 2002.09.26 한글 (hwp) | 6페이지 | 가격 500원

소개글

공부끝에 믾은 사료들을 모아 종합한 것입니다.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목차

명의 인조반정 인식과 조선의 대응

1) 명의 '찬탈' 인식
2) 명의 승인을 받기 위한 조선의 노력

본문내용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은 국내적으로 뿐만 아니라 대외관계 면에서도 많은 심각한 문제들을 발생시켰다. 우선 명은 조선에서 정변이 일어나 광해군이 폐위되었다는 소식에 당황하였다. 당시 요동지방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북경의 인후부라고 할 수 있는 산해관마저 후금군에게 위협받던 당시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은 번방인 조선에서 징변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조선을 후금의 배후에서 견제하는 전략적인 거점으로 또한 인식하고 있었던 명은 새로 들어선 인조정권의 향배가 주목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더욱이 평안도 철산(鐵山)과 가도( 島)에는 총병 모문룡이 이끄는 명군이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명으로서는 조선의 사태에 대한 전개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명의 조야는 인조반정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 조선에서 정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 명 조정의 신료들은 대부분 '찬탈'로서 인식하고 있었다. 관찬 기록인 『희종실록(熹宗實錄)』 뿐만 아니라 『양조종실록(兩朝從實錄)』등 사료에서도 인조반정을 '찬탈'이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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