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대첩과 첨단무기
- 최초 등록일
- 2011.06.24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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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임진왜란의 3대 대첩 중 하나인 행주대첩에서 병력차를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하여 정리하엿습니다(역사스페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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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행주대첩 하면 떠오르는 조선군의 무기는 돌멩이다. 부녀자들이 앞치마에 돌을 담아 날라 거기에서 앞치마의 이름 또한 행주치마로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과연 당시로서는 최신식 무기였던 조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을 돌멩이로 맞써 싸워 이길 수 있었을까? 병력 또한 일본군 3만명 대 조선군 2천 3백명이었다. 수만 보더라도 10분의 일도 안되는 숫자로 치른 전투였다. 그리고 행주대첩은 단 하루 만에 끝난 전투였다. 단 하루 동안, 일곱차례의 접전, 그리고 승리! 과연 조선군은 어떤 무기로 이 기적 같은 승리를 일구었을까?
당시 조선군의 무기들로는 천자총통 대장군전, 지자총통, 현자총통, 황자총통, 중완구 등을 비롯한 다양한 무기들이 활용되었다. 크기나 활용 또한 아주 작은 세총통에서 화살을 쏘는 사전총통, 개인소총의 형태이나 제한적으로 쓰였던 승자총통, 또한 크기가 매우 큰 천자총통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었다.
크기가 가장 큰 천자총통의 위력은 어느 정도였을까? 8분의 1의 화약을 넣고 실험한 결과, 33.7 킬로 무게의 대장군전은 약 300미터를 날아갔다. 작은 크기의 조란환을 넣고 발사할 시 거리가 넓을수록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크기가 조금 작은 지자총통의 장군전을 발사하였을 시 사정거리는 천자총통보다 더 길었다.
당시에는 비격진천뢰라는 포탄도 있었다. 일종의 시한폭탄으로 활용되었는데 처음 활용된 곳은 경주성이었다. 1593년 경주성 탈환에 나선 병사 박진이 비격진천뢰로 왜적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기록이 유성룡의 징비록에 나온다. 비격진천뢰는 `화포식언해`와 `융원필비`등 옛 기록에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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