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카개신-백촌강전투
- 최초 등록일
- 2011.06.24
- 최종 저작일
- 2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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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645년 다이카개신 , 그 주역 등
목차
없음
본문내용
제목
_ ‘다이카 개신’
이름
▣ 다이카 개신, 645년 ▣
다이카 개신이란 7세기 중엽에 일본에서 중국의 율령제를 본떠 왕을 정점으로 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정치개혁을 말한다.
7세기경 무렵, 고대 일본은 동쪽 변방의 소국이었다. 이미 기원전 3세기에 통일제국을 형성한 중국과 비교했을 때, 일본은 크게 뒤떨어진 상태였다. 지방의 호족들은 저마다 부를 축척하며 그들의 땅에 속한 사람들을 다스렸고, 오오키미(천왕)의 권력은 그저 `연합체의 수장` 혹은 `두목` 정도에 불과했다.
다이카 개신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소가’ 씨이다. 《고사기(고지키)》와 《일본서기(니혼쇼키)》에 따르면 소가씨는 다케노우치노 스쿠네의 후손으로서, 모노노베 일족을 꺾고 조정 내의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한 자들이다. 소가노 우마코는 스슌 천황(덴노)을 시해하고 자신의 조카를 즉위시킬 정도였으니 그들의 영향력을 가히 짐작해볼 수 있겠다. 끝없이 강대해져만 가던 소가씨는 소가노 에미시와 그의 아들 이루카를 거치며 643년 11월, 야마시로노 오에왕의 자살 사건을 통해 많은 귀족들의 반감을 사게 된다. 야마시로노 오에 왕은 쇼토쿠 태자의 아들로서 소가씨의 가까운 친척이었던 후루히노 오에황자의 왕위계승 라이벌이었다. 이루카가 모반의 누명을 씌워 자살로 몰고 간 것이다. 이러한 정세를 이용하여 소가씨를 타도할 계획을 세운 이가 바로 나카토미노 가마타리이다.
다이카 개신의 주역, 나카토미노 가마타리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