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역사관계
- 최초 등록일
- 2011.06.16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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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조선과 중국의관계, 고구려와 중국(수나라, 당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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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문명과 역사>
한국과 중국의 역사관계
고조선과 중국의관계
우리 역사상 가장 먼저 정치적 사회를 이룩한 고조선은 청동문화를 기반으로 아사달에 성읍국가를 건국하고 철기문화를 수용하면서 요하와 대동강 일대의 세력을 규합하여 대연맹국으로 성장하였다.
고조선이 중국 대륙과 한반도에 걸쳐 강력한 대국을 이루고 있을 때, 중국은 요, 순, 하, 은, 서주, 춘추, 전국, 진(秦)을 거쳐 서한 초기까지 이른다. 따라서 고조선은 중국의 여러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고조선이 중국 대륙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을 때 국가관계의 수준에 있었던 사회는 중국 뿐이었다.
고조선과 중국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이 발전에 상호간에 자극과 영향으로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고조선과 중국의 정치적 교섭은 일찍부터 이루어졌다. 중국의 순임금 시대부터 정치적 교섭의 기록이 있었다. 기원전 2209년경 식신 씨가 내조하여 활과 화살을 공납했다. 또 고죽국도 상나라 시대에 고죽국의 왕자 백이와 숙제가 상의 서방에 있던 주나라를 방문했다. 상나라는 은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으므로 은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상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걸왕 21년에 백이, 숙제 형제가 주를 방문한 것이다. 여기서 주는 주나라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후 주나라가 일어서고 성주대회 때에는 고조선의 위성국들이 참가한 것으로 기록에 보인다. 숙신, 예, 양이, 양주, 발인, 유인, 청구, 고리, 고죽 등의 대표가 성주대회에 참가했다. 이들 나라는 고조선의 위성국들이다. 고조선의 여러 위성국 가운데 이들이 중국과 교류를 튼 것은 이들이 중국과 가까운 지금의 요서 지역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주나라 말기와 선왕때 고조선의 단군이 직접 주나라 왕실을 방문하여 정중하고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주나라 선왕 때의 단군이 주나라 여왕의 생질녀를 아내로 맞이했다는 것이다. 이는 양국의 우호를 말해 주는 것이다. 고조선의 단군이 추, 맥 등 북쪽의 위성국들을 다스리는 것을 주 ......(중략)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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