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백가의 역사적 성격
- 최초 등록일
- 2011.06.15
- 최종 저작일
- 2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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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제자의 학과 사상의 이해(이성규)의 논문을 요약 작성한 레포트입니다.
휴먼명조 12포인트, 3장 꽉찬 분량입니다. 교수님께 핵심 정리가 아주 잘 되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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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자백가는 춘추전국시대라는 중국 역사상 가장 커다란 전환의 시대에 학인들에 의해 새롭고 체계적인 지적운동으로서 중국 최초로 본격적인 學을 성립시켜 이후 중국사상의 기본적인 내용과 골격을 만들었다.
제자학은 商周시대의 씨족질서의 동요해체가 진행되면서 개인의 사회적 위치와 역할은 전통에 의해 부여보장된 것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 발견획득하는 것이 되었고 이러한 스스로의 지적 모색을 시도하며 선생을 찾을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 개인의 학과 그전수를 위한 학단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학단은 개인적인 강설이 지식을 전수받는 주요 방법이었다. 종이가 없던 당시 상황과 한자의 다의성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개인의 독서에 의한 지식획득이 더 어려웠던 이유가 컸기에 학단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학단은 원방에서 찾아오고 또 선생과 항상 접촉 하기위해 생활 집단으로 조직될 필요가 있었으며 학단내 질서는 가족생활의 그것처럼 규정되었다. 이러다 보니 문제의 해답과 판단이 교사의 절대적인 권위에 의해 재단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제자들은 진리의 논리적 입증보다 경험이나 선례 또는 공리성을 입론의 준거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실제 대부분의 제자들은 진리의 논리적 입증보다는 경험이나 선례 또는 공리성을 입론의 준거로 삼으며 시비판단의 3가지 기준은 고성왕지사(古聖王之事), 백성이목지실(百姓耳目之實), 국가백성인민지리(國家百姓人民之利)였다. 이중 고성왕지사는 자신의 입론이 곧 古성왕의 ‘敎’나 ‘法’이란 주장은 그 성왕의 시대를 완벽한 이상의 전형으로 미화하는 논리로 연결되어 형식상 현실개혁이 이상적인 과거의 재현을 의미하게 되어 복고적인 성격을 띠고 논리의 진실보다는 전통의 권위에 가탁한 결과를 가져왔다. 공자의 “述而不作”이 대표적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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