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서정시의 확립과 낭만주의
- 최초 등록일
- 2011.06.14
- 최종 저작일
- 20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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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근대 서정시의 확립과 낭만주의
<요약>
공적 세계에서 자아의 탐구로
1876년 일본에 의해 강제된 병자수호조약은 조선의 주체적 근대화가 왜곡되는 시발점이었고, 이를 계기로 조선은 1905년에 일제의 반식민지로 떨어졌다. 애국계몽기(1905~10)에 도시를 근거로 하여 지식인 중심의 문화투쟁이 전개되었는데, 이를 선도한 시운동의 구체적 표현이 신채호가 주창한 ‘동국시계혁명’이다. 애국계몽기 시문학의 근대성의 적극적 의미는 시적 성취 면에서 드러난다.『대한매일신보』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율격적 해방의 몸부림, 다양한 시적 정서의 표출, 기법의 다기화, 온갖 인정물태의 풍부한 형상화 등 전통적인 시양식의 다채로운 변용이 시도되는 발전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1914~15년 동경유학생회지인『학지광』을 중심으로 ‘자유시’에 대한 탐색이 조심스레 이뤄졌다. 시와 산문의 본질적 차이, 즉 시에 대한 장르의식을 어느만큼 견지하면서 이러한 시적 주제를 한층 적극적으로 추구해나간 시인들은 주요한, 황석우, 김억 등이다. 이들 시의 공통적 취약점은 첫째, 지나친 상징성이 오히려 시적 상황을 모호하게 할 뿐 아니라 서정성의 고양에도 커다란 장애가 됨으로써, 작품 내적 근거를 찾기 힘든 어정쩡한 난해시로 곧잘 귀결되었다. 둘째, 전통시의 운율적 자질에 대한 무지 혹은 그 창조적 가능성에 대한 무관심 때문에 시적 긴장도가 떨어진 일종의 산문으로 낙착되었다. 셋째, 시적 정서의 근간을 이루는 고통·번민·좌절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사회적 탐색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이 각별히 주목되는 것은, 문학의 존립 근거를 그 자체에서 찾으려는 일종의 순문예의식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과, 특히 ‘서정시’의 대두를 가능케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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