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 최초 등록일
- 2011.06.10
- 최종 저작일
- 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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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0.19사건에 대해 모든 자료를 총합, 정리한 문서입니다. 한국사 시험대비 레포트로 정리한 문서이며, A+인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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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기억하라, 맞서라!
report
10.19사건
우리의 알 권리-왜곡된 진실-
10.19사건 선정 이유
우리나라 남단에 자리한 이름난 항구 도시 여수. 동백꽃 붉은 오동도, 일출이 그만이라는 향일암이며 여수 앞바다에 동동 떠 있는 다도해의 섬들은 여수가 제 얼굴처럼 내미는 자랑거리다. 얼마나 물빛이 곱고 아름다우면 여수(麗水)라 불렀겠는가.
하지만 아름다움에는 슬픔이 깃든다고 했다. 여수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 현대사에서 여수는 아름다움으로 기억되기 보다 차라리 ‘반란의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1948년 10월 19일 14연대가 제주도 출병을 거부하면서 일어난 여순사건 때문이다.
이제부터 ‘반란의 도시’ ‘여수’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해방후 3년인 1948년 10월 19일밤, 간간히 들리는 총성과 함께 주둔군인들에 의하여 감행된 14연대 반란사건(10.19사건). 일주일 뒤에 반란군을 소탕하겠다고 진군한 국군 진압군에 의하여 여수 중심 시가지가 불질러 사라지고, 여수/순천 청장년 6천여명을 학살한 사건.
피해가족을 오히려 공산당으로 몰아 40여년동안이나 연좌제에 묶어 두었던 사건!
속칭 `여순 반란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정식으로 `10.19 사건`으로 개칭 되었다. 이 사건은 제주도 `4.3항쟁`과 더불어 해방정국에서 발생한 최대의 민족사적 비극이었다. 이 사건은 여수,순천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기억하기 꺼려하는 사건으로 남아있다. 특히 여수 주민들은 10.19 사건의 전개과정을 묻는 질문에 ‘당한것만도 지긋지긋한데 대답은 무슨 대답이냐` 며 질문을 회피하고 만다. 이 사건은 전대미문의 엄청난 인명피해가 일어난것 뿐 아니라 사건 자체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이 역사적 사건에 대한 충분한 평가작업이 이루어 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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