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을 빛낸 인물 이규보
- 최초 등록일
- 2011.06.08
- 최종 저작일
- 2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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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직접 작성하고 편집하고 한것입니다. 이과목 성적 A뿔 나왔습니다.
목차
1. 임경업 장군 (조선 병자호란때의 명장)
2. 김상용 선생 (조선)
3. 이건창(조선시대 문인)
본문내용
인천을 빛낸 인물‘이규보[李奎報,1168~1241]’
백운 이규보 선생은 고려의 문호로서 고려 때 권신 최우의 총애를 받아 강화에서 재상을 지낸 분이다. 고려 고종 28년에 몽고의 난으로 천도했을 때 임금을 모시고 강화도에 왔다가 74세로 돌아가신 분이다. 그의 저서로는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 외에도 팔만대장경의 기원문인 대장경각판 군신 기고문 등이 있으며 몽고정부에 보내는 외교문도 이 분이 쓰셨다. 또한 유교, 불교에도 정통한 문인으로 시와 술, 거문고를 너무 좋아하여 삼혹호(三酷好)선생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묘소는 전등사 가는 길인 진강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묘소에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성장 및 경력
● 9살 때부터 중국의 고전들을 읽기 시작하여 문재가 뛰어남을 보였고, 14살 때에는 시를 빨리지어 이름을 높이는 등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형식주의에 젖은 과거시험의 글을 멸시하여사마시에는 연속으로 낙방하였다. 16세 부터 약 5년간 자유분망하게 지냈다.
● 1189년(명종 19)에 사마시에 수석으로 합격, 다음해에 예부시에서 동진사로 급제하였다.
● 그러나 오랫동안 관직에 나가지 못하게 되자, 25세 되던 해에는 개경의 천마산에 들어가 세상을 관조하며 지낸다.
● 26세(1193년)에 다시 개경에 돌아왔으나, 가난에 쪼들리게 되고, 이 때, 동명왕편, 개원천보영사시 등을 짓는다.
● 1197년에 최충헌정권의 요직에 있었던 조영인, 임유, 최선 등에게 30세 되도록 관직이 없음을 통탄하며 지방관이라도 달라는 서신을 썼다. 32세(1199년, 신종 2) 때 최충헌의 초청시회에서 최충헌을 국가적으로 공로가 매우 큰 사람임을 칭송하는 시를 읊고 나서야 전주목의 사록겸장서기가 되었으나, 동료의 비방에 의해 1년 4개월 만에 면관되었다.
● 1202년(신종 5)에 농민폭동진압군의 병마녹사 겸 수제로 자원종군하고, 1년 3개월 만에 돌아 왔으나 상을 받지 못하여 좌절하였다. L() 1207년(희종 3)에 최충헌에 의해 직한림으로 발탁되어, 참군사, 사재승,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