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실의 혈통의식
- 최초 등록일
- 2011.06.04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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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왕실의 혈통의식에 관한 레포트입니다
목차
Ⅰ.서설
Ⅱ. 고려왕실 내 혈통의식
1. 왕실 혈통의 신성화
2. 양측적 친속관계
3. 왕실 내 소군(小君)
Ⅲ. 결어
본문내용
Ⅰ.서설
각 시대의 혈통의식은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을 반영한다. 그중에서도 고려시대에 주목하는 이유는, 이 시대의 혈통의식이 현대로 가까워질수록 개방적으로 변하는 신분․혈통의식의 흐름에 역행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유교사상이 확립된 이래로 현재까지 우리나라에는 ‘부계혈통주의’가 만연해있다. 이와 달리 고려시대의 혈통의식은 그 이후의 조선시대보다 더 개방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부계혈통과 함께 모계혈통까지도 중시하는 ‘양측적 친속관계’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특히, ‘왕실’의 혈통의식은 사회에 만연한 혈통의식에서 나아가 그 시대만의 특수성을 더 잘 보여주기 때문에 주목해볼만하다. 또한, 당시에는 ‘왕실’이 지배층이 되어 사회를 만들어 갔으므로 그들의 의식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 보고서에서는 고려 왕실 내 혈통의식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통해 당시대가 갖는 특수성을 고찰해 보려한다.
Ⅱ. 고려 왕실 내 혈통의식
1. 왕실 혈통의 신성화
- <<고려사>> <고려세계>의 국조설화 (해설)
김관의의 <<편년통록>>에 이르기를, “호경(虎景)이라는 사람이 성골장군(聖骨將軍)이라고 자칭하였다. … 구룡산 여산신과 통해 아들을 낳으니 강충(康忠)이라고 하였다. 강충은 생김새가 단엄(端嚴)하고 재주가 많았다. 서강(西江) 영안촌(永安村) 부인(富人)의 딸인 구치의(具置義)에게 장가들어 오관산 마하갑에 살았다. … 두 아들을 낳으니, 둘째가 손호술(損乎述)인데 후에 보육(寶育)으로 이름을 고쳤다. 보육은 성품이 자혜로왔는데 출가하여 지리산으로 들어가 수도하다가 돌아와 … 마하갑으로 옮겨 살았다. 일찍이 꿈에 곡령에 올라 남쪽을 향해 오줌을 누었더니 그 오줌이 삼한의 산천에 가득차고 은빛 바다로 변하였다.
참고 자료
이정란, 『주제로보는한국사(고려편)』, 고즈윈,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