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인
- 최초 등록일
- 2011.05.24
- 최종 저작일
- 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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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미인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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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대 서양 세계에서는 대체로 풍만하고 관능적인 여인이 미인으로 대접받았으며, 하얀 피부, 파란 눈, 금발을 모두 갖춘 여인이 미인의 표준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유한 계급의 부인들은 이 조건에 보다 자신을 근접시키고자 온갖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납 성분이 들어 있는 표백 화장품을 지나치게 사용한 나머지 얼굴을 망친 표백미의 희생자로 유명하다.
중세 시대에는 금욕 정신으로 인해 미인 관이 달랐다.
호리호리하나 야위지 않은 몸통, 가느다란 팔다리, 쳐진 어깨, 편편한 허리, 귀여운 가슴. 이것이 중세에 제시되었던 미인의 몸매였다.
얼굴이 매혹적이고 몸매가 육감적인 여인은 마녀사냥의 희생물이 되기 십상인 까닭에 화장기 없는 소녀 취향의 얼굴이 미인의 기준이 되었다.
초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귀부인 상이 미인의 기준으로 등장했다.
체격은 빈약하고 가슴은 평평하였으며 허약한 여인이 귀부인상의 모델이었다.
그녀는 아무런 운동도하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시간을 실내에서 보냈다. 작은손 은 오랜 훈련으로 탁월해진 ‘세련의 교양’이었다.
이 시대의 미인은 한마디로 인형 같은 존재였다.
현재와 같은 서양인들의 미인 관은 19세기 초에 부활하여 현대 들어 확실히 자리 매김 되었다.
서양 사람들은 1820년 그리스 남쪽 에게해의 밀로 섬에서 〈비너스 상〉이 출토되자 그것을 여성미의 절대 기준으로 삼았다.
선사시대부터 근세까지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미인상은 다산력과 풍만이었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세기 들어 변화가 빨라졌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직후까지는 마릴린 먼로처럼 대단히 육감적인 여배우가 대중을 사로잡았다.
60년대 이후엔 바브라 스트라이전드나 소피아 로렌처럼 `색다른 생김새`를 지닌 여배우도 등장했는데, 이것은 곧 개성이 존중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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