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향교 방문 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1.05.22
- 최종 저작일
- 2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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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전주향교를 방문하고나서 전통교육에 대한 고민을 통해 쓴 글입니다.
교육철학이나 교육학 과제에 참고하시면 좋을 것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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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급격한 근대화와 함께 우리나라의 공교육제도는 혁명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그 결과 역사상 유래 없는 경제발전을 이루어냈다. 모두들 경쟁적인 분위기 속에서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지 못해서 안달이고 이렇게 습득한 지식을 통해 부와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 한다. 그 결과 천연자원의 양이 거의 ‘0’에 가까운 우리나라에서 오로지 인적자원만을 통하여 최단기간에 최고의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공부’는 개인의 부와 사회적 지위, 그리고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수단이 되었고 이것이 아직까지도 많은 대한민국 학생들과 부모님들이 생각하는 ‘공부’의 개념이 되어버렸다. 따라서 더 빨리, 더 많은 지식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소유하지 못한 데서 오는 고통을 느끼게 되고 지식을 소유한 사람마저도 언제 추월당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가지며 쫓기듯 공부하게 되었으며 이는 공부를 고통이라고 느끼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엄청난 경제발전 속에서도 정작 삶의 질을 높이지는 못했을 뿐 아니라 ‘배움의 즐거움’이라는 말은『논어』에나 나오는 상투적이고 현실감 없는 옛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유학의 주요 경전인 『논어』에서 보면 분명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말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기쁨으로 깨달은 배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데서 기쁨이 오고 이러한 사람들은 더 나아가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도 그 기쁨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즐거움을 주던 배움이 왜 고통스럽지만 성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공부로 변질되었을까? 이에 대한 탐구에 앞서 우리의 선진들이 배움의 즐거움을 얻던 전통 교육기관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나라의 전통 교육기관에는 향교, 서당, 서원, 성균관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성균관과 향교가 중추를 이루었다. 향교는 조선시대에 성균관을 본 따 1읍 1교의 원칙으로 각 읍에 지어진 교육기관이었다. 현존하는 향교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향교인 강릉향교나 임진왜란 때 유일하게 그대로 보존된 장수향교 등이 있다. 다행히 전주에도 전주향교가 남아있어, 최근에 드라마의 촬영지로 장소협찬을 했을 만큼 잘 보존되었다. 먼저 향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대성전과 명륜당을 보았다. 문묘라고도 하는 대성전(大成殿) 대성전 사진 마지막장에 첨부
은 공자를 모시는 곳으로서 배향공간이었다. 향교는 공자, 안자, 증자, 자사의 사성(四聖)과 문창후(최치원), 홍유후(설총), 문성공(안유), 문충공(정몽주), 문헌공(정여창), 문경공(김굉필), 문원공(이언적), 문정공(조광조), 문정공(김인후), 문순공(이황), 문간공(성혼), 문성공(이이), 문열공(조헌), 문원공(김장생), 문정공(송시열), 문경공(김집), 문순공(박세채), 문정공(송준길)의 동방 18현을 모시며 이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당의 기능을 하였던 것이다. 또한 명륜당(明倫堂) 명륜당 사진 마지막장에 첨부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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