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4 운동기 진보적 지식인들의 유교 비판

등록일 2002.08.27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목차

1. 진독수(1879∼1942)
2. 호적(1891∼1962)
3. 노신(1881∼1936)

본문내용

1911년 혁명의 불꽃은 타올랐지만 그것은 진정으로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지속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중국은 혁명 이후에도 여전히 전통문화를 완전히 포기한 상태에서 새로운 시대로 이전하지 못하고 있었고 孫文을 위시한 혁명의 주체 세력들은 자신들의 힘을 완전히 결집하지 못한 상태에서 강력한 군벌세력인 袁世凱와의 위험한 공존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서 다수의 復派들의 반동적인 시도에 혁명 후의 중국은 계속하여 노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복벽파들은 수천 년을 이어온 중국의 봉건사회의 전통적인 사상인 유교를 계속적인 정치이념으로 삼는 봉건제도로의 퇴보를 시도하였다. 1912년 康有爲를 비롯한 복벽파의 문인들은 원세개의 지원과 인정 하에, '시대적인 혼란을 우려하여 공자의 가르침을 밝힘으로써 올바른 도를 지키려고 고심하는' 공교(孔敎)를 성립시켰다. 이는 원세개의 독재정치와 제제운동에 대한 이념과 강유위가 주도한 保皇派의 이념적 야합이 가져온 반동적인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참고 자료

오재환 역, <중국 개혁개방사>
윤혜영 외, <중국통사>
송영배, <중국사회사상사>
서울대 편, <강좌 중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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