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레포트
- 최초 등록일
- 2011.05.04
- 최종 저작일
- 20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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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하회마을에 대해 조사한 리포트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 서론
하회마을의 경우 고려시대부터 신흥사대부 사족들이 중심으로 사는 동족촌으로 형성되었다. 그후 유성룡의 일가인 풍산류씨가 대대로 내려왔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산업사회로 인하여 동족사회가 거의 해체되어가고 하회마을은 관광촌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여기서 하회마을을 발생적론적으로 본동족촌과 앞으로의 역할을 담당하는 관광촌으로서의 입장으로 서술해보도록 하겠다.
■ 하회마을에 대하여
● 개요
경북 북부의 중심도시인 안동은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에 알맞은 지역이어서 청동기시대의 흔적부터 찾아볼 수 있고, 소국이 일찍부터 형성되었던 듯하다. 신라건국 후 고타야군으로 불리다가 경덕왕 때 고창군으로 개칭되었다. 고려건국 후 삼태사가 태조 왕건을 도와 후백제의 견훤을 물리친 공으로 안동부로 승격(930년)되었으니 안동이라는 지명을 이 때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고려, 조선시대에는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서 전국에서도 아주 중요한 곳이 되었다.
고려시대 이래 안동은 살기 좋은 곳으로 여겨져 중소 지주층이 이주해오는 수가 많았는데, 그들을 비롯해서 향리로 자리잡았던 이들이 신흥사대부로 성장하면서 안동의 중심 사족(士族)을 형성했다. 이런 사족들의 바탕이 된 것이 조선 중기이래 형성된 동족마을이다. 안동의 대표적인 동족마을인 하회마을도 그런 내력을 지니고 있다.
‘하회 별신굿 놀이’와 ‘하회탈’로 유명한 하회(河回)마을은 임진왜란때 영의정을 지낸 명재상 유성룡(柳成龍)의 일가가 크게 번창하며 살았던 곳으로 풍산 류씨가 대대로 내려오는 전형적인 동성(同姓)부락이다. 동쪽은 태갭산의 지맥인 화산(321m)이 감싸고 있으며 낙동강이 서, 남, 북을 따라 마을 전체를 태극형(또는 연화수형)으로 감싸흐른다. 이를 풍수지리적으로 산태극수태극을 이루는 길지로 임진왜란 때는 전화를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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