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문학사-중세전기문학
- 최초 등록일
- 2011.05.03
- 최종 저작일
- 20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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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 문학사
목차
6.1 쟁패와 창업의 신화적 표현
6.1.1 건국신화의 재현
6.1.2 고려의 건국신화
6.1.3 왕실 혈동의 위기
6.2 향가 전통의 행방
6.2.1 고려전기의 향가
6.2.2 균여의 <보현시원가>
6.2.3 예종의 <도이장가> 및 관련 작품
6.2.4 정서의 <정과정곡>
6.3 과거제 실시와 한문학
6.3.1 고려 한문학의 출발점
6.3.2 과거제 실시
6.3.3 조익 왕융 최승로
6.3.4 현종 최충 박인량
6.3.5 김황원
6.4 불교문학의 재정립
6.4.1 고려전기 불교의 판도
6.4.2 균여 제관 의천 계응
6.5 설화와 역사 사이
6.5.1 민간 전승의 저류
6.5.2 화풍과 국풍
6.5.3 비범한 인물의 탄생
6.5.4 <가락국기>
6.5.5. <수이전>
6.5.6 <삼국사기>
6.6 고려전기 귀족문학의 결산
6.6.1 예종 시절의 풍류
6.6.2 동조자와 비판자
6.6.3 격동의 와중에서
6.6.4 김부식의 시대
6.6.5 무신란 직전의 상황
6.6.6 제주시인 고조기
본문내용
신라말에 국가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통치력은 약화되자, 항거하는 세력이 나타났다. 그 중 견훤과 궁예가 위세를 떨쳐 각기 백제와 고구려를 재흥한다고 나섰다. 그래서 후삼국시대가 시작되고, 936년 왕건의 고려에 의한 재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약 반세기 동안 전국에서 치열한 내전이 벌어졌다.
모든 것이 혼란하기만 한 듯한 시대일수록 질서를 창조하는 역량이 요구되었다. 첫 단계의 반란세력은 이념이니 문화니 하는 것을 갖추지 못했으며 백성의 불만을 이용하기나 하고 바람직한 통치방식이 무엇인지 몰랐다. 견훤이나 궁예는 그런 단계를 벗어났으며, 왕건은 그 둘보다 앞섰다.
나라는 세우는 데까지 이르면 민중영웅의 전설을 건국신화로 발전시켜 건국의 유래와 정당성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고대의 건국신화가 기억에 남아 있어서 신라의 정통성을 보장할 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백제에 대한 추억의 원천으로도 작용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과 대치될 수 있는 새로운 건국신화를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이미 신화는 아니었다. 신화적 질서를 내세운다 해도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통일을 위한 경쟁에서 승리하는 쪽은 중세적 보편주의를 한층 수준 높게 이룩하는 것이 난국타개의 적극적인 방안임을 알았다. 건국신화를 고대와는 다르게 마련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장애가 되지 않게 해야 했다.
견훤을 주인공으로 한 후백제 건국신화는 미완성이다. 이야기가 단편적인 것들에 그치고 한데 모아지지 않았으며, 통치이념 같은 것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궁예는 중세의 위기를 고대로 돌아가 해결하는 방안을 완벽하게 마련하고자 하다가 실패했다. 중세에 들어선 지 이미 오래 되어 일반 백성들에게도 널리 자리잡은 합리적이고 비판적인 의식을 꺾지 못해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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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