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사: 자유민권운동

등록일 2002.08.01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2,000원

소개글

중앙집권에 의한 통일국가의 건설과 부국 강병책의 강행에 동반하여 신분상의 특권을 빼앗긴 사족(士族)은 정부에 강한 불만을 품었다. 여기에 조선 출병을 둘러싼 논쟁에서 패한 사이고 타카모리 등은 모두 사의를 표하고 정부를 떠났다. 정한론자들의 사임은 그를 지지하는 불평사족을 격분시켜 무력으로 정부에 반항하는 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어 1876년 가록(家祿)의 폐지가 결정되자 사족은 점점 궁지에 몰려, 10월에 구마모토(熊本)의 신푸렌(神風連)의 난, 야구마구치(山口)의 하기(萩)의 난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 1877년 2월에 가고시마에서는 사이고 타카모리를 옹립한 불평사족들이 거병하여 불평사족 30만의 병력으로 큐슈로 북상하여 구마모토에 이르렀지만, 정부군에 의해 결국 패하고 이후 사족에 의한 무력반란은 종식되며 언론에 의한 저항으로 바뀌어나갔다.
따라서 1870년대 중반까지의 농민소요 및 사무라이반란과는 대조적으로, 1870년대말에는 지방조직과 신문, 잡지를 통한 정치적 선동 또는 정부에의 직접 청원 등의 방법을 통하여 보다 평화적인 형태의 정치적 저항이 두드러졌다.

목차

1. 사족의 발란- 실패
2. 자유 민권운동- 성공( 국회개설)

본문내용

중앙집권에 의한 통일국가의 건설과 부국 강병책의 강행에 동반하여 신분상의 특권을 빼앗긴 사족(士族)은 정부에 강한 불만을 품었다. 여기에 조선 출병을 둘러싼 논쟁에서 패한 사이고 타카모리 등은 모두 사의를 표하고 정부를 떠났다. 정한론자들의 사임은 그를 지지하는 불평사족을 격분시켜 무력으로 정부에 반항하는 자가 나타나게 되었다. 이어 1876년 가록(家祿)의 폐지가 결정되자 사족은 점점 궁지에 몰려, 10월에 구마모토(熊本)의 신푸렌(神風連)의 난, 야구마구치(山口)의 하기(萩)의 난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 1877년 2월에 가고시마에서는 사이고 타카모리를 옹립한 불평사족들이 거병하여 불평사족 30만의 병력으로 큐슈로 북상하여 구마모토에 이르렀지만, 정부군에 의해 결국 패하고 이후 사족에 의한 무력반란은 종식되며 언론에 의한 저항으로 바뀌어나갔다.
따라서 1870년대 중반까지의 농민소요 및 사무라이반란과는 대조적으로, 1870년대말에는 지방조직과 신문, 잡지를 통한 정치적 선동 또는 정부에의 직접 청원 등의 방법을 통하여 보다 평화적인 형태의 정치적 저항이 두드러졌다.

참고 자료

-참고도서
高橋幸入郞, 『일본근대사론』, 지식산업사, 1998
한영혜,『일본사회개설』,한울, 2001
한태호, 『일본사정』, 한국국제문제 연구소
家永三郞, 『신일본사』, 文苑閣, 1995
피터두으스, 『일본근대사』,지식산업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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