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이해] 세계적인 명 촬영감독 5人에 대하여 [ 그레그 톨렌드, 라울 꾸다르, 빌리 비처, 제임스 웡 호웨, 빗토리오 스토라로 ]

등록일 2002.07.30 한글 (hwp) | 4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세계적인 명 촬영감독인 그레그 톨렌드, 라울 꾸다르,

빌리 비처, 제임스 웡 호웨, 빗토리오 스토라로 의 생애와

그들이 남긴 위대한 작품들에 대해 조사하였으며

그들의 사상 또한 들어있어 영화를 다루시는 분들꼐는

본 받을 것들이 많습니다.

정말 열심히 만든 레뽀임으로 자료 평가 꼭 부탁드립니다.

수거하세요...

목차

1. 서론
영화 속에 살아 숨쉬는 촬영감독들.

2. 본론
▷그레그 톨렌드(Greg Toland)
▷라울 꾸다르(Raoul Coutard)
▷빌리 비처(Billy Bitzer)
▷제임스 웡 호웨(James Wong Howe)
▷빗토리오 스토라로(Vittorio Storaro)

본문내용

▷빌리 비처(Billy Bitzer)
비처는 24살의 나이로 영화사에 입사하여 처음에는 전기기사로 일하다가 촬영기사가 되었다. 달리는 기차 위에서 촬영을 하는 등 당시로선 획기적인 대담한 시도를 감행하여 초기 영화 촬영의 지평을 넓혔다. 그의 인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된 것은 그리피스와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초창기 두 사람은 기술적 예술적으로 같이 성장함으로써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피스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시도되기 시작한 배우의 얼굴 클로즈업과 광각의 롱쇼트 촬영에 이르기까지 당시 비처가 구사한 기법들은 오늘날에 있어서도 촬영의 표본이 되고 있다. 그는 완벽한 영상을 추구하기 위하여 손수 렌즈를 개발하고 다양한 촬영기구들도 고안하였다. 이러한 팀웍을 바탕으로 그리피스와 비처는 세계 영화사에 영원히 기념될 명작 <국가탄생>과 <인톨러런스>를 제작하였다. <인톨러런스>에서 그리피스는 바빌론의 거대한 세트를 부감쇼트로 스펙타클하게 묘사하고 싶어했는데 비처는 기구를 타고 올라가 촬영을 강행함으로써 감독의 요구를 충족시켰다. 비처와 그리피스의 만남으로부터 미국영화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영화 촬영술의 기초가 마련되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레그 톨렌드(Greg Toland)
톨렌드는 미국 영화 촬영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촬영감독으로 일찍이 발성영화 초기에 크게 문제시되었던 카메라 소음을 차단시키는 방음장치를 개발하여 칭송을 받았다. 그는 27세 때 촬영기사의 한 부분을 맡는 유니트 카메라맨이 된 후, 30년대 후반 <폭풍의 언덕>으로 오스카상을 받게 됨으로써 미국 영화계에서 최고의 촬영감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톨렌드의 명성은 창조적인 조명기술과 깊은 심도의 촬영술에서 기인한다. 특히 윌리엄 와일러의 <데드 엔드>와 존 포드의 <분노의 포도>등의 영화에서 촬영술의 진수를 보여준 그는 1941년 <시민 케인>의 촬영감독으로 발탁되어, 불후의 명작을 창조하였다. 톨렌드는 이 영화에서 빛의 투과율을 높이기 위하여 코딩된 렌즈를 개발하고, 강렬한 아크 조명을 실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초점거리를 최대한 넓힌 획기적인 심도촬영(deep focus)을 선보였다. 앙드레 바쟁이 미장센의 표본으로 삼고 칭찬을 아끼지 않은 <시민 케인>의 유명한 쇼트들은 모두 톨렌드의 심도촬영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다. 톨렌드가 개발한 이러한 심도촬영은 이후 텔레비전에 완전히 적용되어 오늘날 스튜디오 제작의 표본이 되고 있다.

이 자료와 함께 구매한 자료

      최근 구매한 회원 학교정보 보기
      1.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수와 학교정보이며
         구매한 본인의 구매정보도 함께 표시됩니다.
      2. 매시 정각마다 업데이트 됩니다. (02:00 ~ 21:00)
      3. 구매자의 학교정보가 없는 경우 기타로 표시됩니다.
      최근 본 자료더보기
      추천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