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발전과 사회 ( 한국사 과목 A 받은 레포트 !!! )
- 최초 등록일
- 2011.04.12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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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 멸망 이후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방의 고구려 땅은 당의 안동 도호부가 지배하고 있었다. 고구려 유민들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에 계속 저항하였고 이러한 배경에서 발해는 7세기 말 당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조영을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과 말갈 집단을 데리고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았던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길림성의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세웠다(698). 이러한 발해의 건국으로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공존하는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었다.
목차
1. 발해의 발전
2. 발해의 정치와 사회
3. 발해의 문화
본문내용
1. 발해의 발전
고구려 멸망 이후 대동강 이북과 요동 지방의 고구려 땅은 당의 안동 도호부가 지배하고 있었다. 고구려 유민들은 요동 지방을 중심으로 당에 계속 저항하였고 이러한 배경에서 발해는 7세기 말 당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고구려 장군 출신인 대조영을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과 말갈 집단을 데리고 전쟁의 피해를 받지 않았던 만주 동부 지역으로 이동하여 길림성의 동모산 기슭에 발해를 세웠다(698). 이러한 발해의 건국으로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공존하는 남북국의 형세를 이루었다.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高王, 699~719) 이 당 세력을 견제하면서 나라의 기틀을 잡고 2대 무왕(大武藝, 719~737) 은 이를 기반으로 하여 국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무왕은 즉위하자 仁安(인안)이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일본에 사신을 보내는 한편 당과는 대립관계를 취하였다. 이 때 발해는 만주의 대부분과 연해주에 이르는 커다란 판도를 이룩하고 있었다.
다음 문왕(大欽茂, 737~794) 때에도 대외적인 발전에 힘을 쓰는 한편 처음으로 당과 화친을 맺고 그의 발달된 제도 문물을 수입하여 내치에서 볼 만한 업적을 이룩하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