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의 역사와 멸망

등록일 2002.07.11 한글 (hwp) | 5페이지 | 가격 1,300원

목차

1.정치
2.제도
3.문화
4.당나라와한반도

본문내용

당나라가 개국한 618년의 한반도는 삼국시대로 고구려의 영류왕(영류왕) 1년, 신라의 진평왕(진평왕) 40년, 백제 무왕(무왕) 19년에 해당되며, 당나라가 멸망한 907년은 신라·후백제·마진(마진)·발해(발해)가 한반도 및 만주 일부지역에서 각축을 벌이던 때이다. 당나라 건국 3년 후인 621년 신라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고 당나라에서도 신라에 사신을 보내와 삼국 중 가장 먼저 국교를 튼 신라는 당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나, 국경을 접한 고구려와는 사이가 나빠 결국 당나라 고종 때 나당연합군(나당련합군)에 의해 백제와 더불어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보다 앞서 고구려는 628년 처음으로 당에 사신을 파견하여 봉역도(봉역도:국경의 경계도)를 보내는 한편, 당나라를 경계하여 631년(영류왕 14)부터 16년간에 걸쳐 동북은 부여성(부여성:농안)에서 서남은 발해만에 이르는 국경지대에 1,000여 리의 장성(장성)을 쌓았다. 백제에서는 651년 사신을 보내고, 당나라에서는 새서(새서)를 주어 신라와 화해하게 했다. 당나라의 태종은 일찍이 고구려를 도모하려는 야심을 품었으나 수나라가 패한 사실을 감안하여 신중을 기하고 있었다. 642년 백제가 신라를 쳐서 대야성(대야성:섬천) 등 40여 성을 빼앗고,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의 당항성(당항성:남양)을 빼앗아 신라의 대당(대당) 교통로를 끊으려 하자 신라는 당나라에 구원을 청하였다. 당은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어 신라를 치지 말도록 권유하였으나, 연개소문이 두 번째 온 당나라 사신을 굴에 가둠으로써 두 나라의 숙명적 대립은 시작되었다. 645년 이래 안시성(안시성)의 혈전(혈전)을 비롯하여 여러 차례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고,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668년 고구려도 신라와 당에 의해 멸망하였다. 이로써 삼국의 정립시대(정립시대)는 막을 내리고 당나라는 백제의 고지(고지)에 웅진(웅진) 등 5도독부(도독부)를 두었으며, 고구려의 평양에 안동도호부(안동도호부)를 두고 전 영토를 9도독부, 42주(주), 100현으로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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