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림정치와 동서분당
- 최초 등록일
- 2011.03.28
- 최종 저작일
- 2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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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림정치와 동서분당에 관한 20분정도의 발표레포트
목차
1. 선조조의 초기 당쟁
2. 정여립의 난 - 반역인가, 모함인가
3. 기축옥사
본문내용
- 사림정치와 동서분당 -
1. 선조조의 초기 당쟁
1) 사화 직후의 사림
사림파가 여러 차례에 걸친 탄압을 극복하고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성리학이라는 정치 이념과 공통의 스승을 모시는 학통으로 연결된 조직을 지닌 정치세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같은 이념과 학통을 공유하는 하나의 정파였다. 사상과 조직을 가진 세력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이러한 이념과 조직이 네 차례의 사화를 당하고도 재기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다.
고려 말 정몽주길재 등 온건개혁파의 학문을 계승한 사림파는 조선 개국 이후 성종 대에 길재의 손제자(孫弟子)인 김종직이 출사한 것을 비롯해 김굉필ㆍ정여창ㆍ김일손 등이 뒤를 이었다. 대체로 영남지방의 사림들은 이들은 이러한 학문적 계보를 이어가면서 훈구파의 탄압에 맞서 싸웠다. 이들은 성리학이라는 확고한 정치 이념과 학통에 의한 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백여 년 간에 걸친 싸움 끝에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림파는 훈구파의 탄압에 맞서 싸울 때는 하나의 정치 세력이자 동지였지만 훈구파를 물리치고 집권당이 되자 갈라지기 시작했다. 동질성보다는 내부의 이질성을 강조하기 시작한 결과 사림 내부가 분열된 것이다. 흔히 ‘사색당쟁(四色黨爭)’이라고 부르는 조선의 당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2) 붕당 출현을 예언한 이준경
사림이 둘로 분당되기 전에 이를 예언한 인물이 있었다. 조선 중기의 명재상인 동고 이준경이다. 동인과 서인이 분당되기 4년 전인 선조 4년(1571년) 영의정이었던 그는 사망하기 직전에 임금에게 상소문을 올려 이렇게 말했다.
참고 자료
KBS 역사스페셜(159회) - 역모인가 조작인가 조선최대 정치미스테리 정여립의 난
「조선시대 당쟁사」 이성무 저. (아름다운날, 2007)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 이덕일 저. (석필, 1997)
「조선왕조사 1 - 건국에서 현종까지」 이성무 저. (동방미디어, 1998)
「지워진 이름 정여립」 신정일 저. (가람기획,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