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 최초 등록일
- 2011.03.26
- 최종 저작일
- 2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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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당의 자서전을 통해서 그의 삶을 돌아보고, 작품 속에 나타난 불가적/ 유가적 색채를 살펴본다.
목차
1. 미당의 발자취를 따라서
2. 미당의 작품 길라잡이
2.1. 미당시의 불가적 측면
(김옥성,「서정주 시의 윤회론적 사유와 미학적 의미」,『종교문화비평』9,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06. 참고)
2.2. 미당시의 유가적 측면
(윤석성, 「未堂詩의 儒家적 측면」, 『동악어문논집』34, 동악어문학회, 1999. 참고)
3. 미당의 시 감상하기
동천/ 엽서
본문내용
1. 미당의 발자취를 따라서
중앙고보 설립자인 동복영감의 동상(왼쪽)과 학창시절의 미당 모습(오른쪽)
광주학생사건으로 인해 중앙고보에서 퇴학당한 뒤 편입하여 잠시 다녔던 고창고보
석전스님의 권유로 미당이 잠시 학승으로 머물렀던 대원암과 불교전문학교
<<<불교전문학교를 다니던 때의 미당 사진 “석전스님이 좋아 불경을 읽고 있기는 했지만, 한 불교신도가 되기에는 나는 아직도「정리하지 못한 여러 가지 것과 또 도달하지 못한 여러 가지 것」을 가지고 있었다. 톨스토이 주의가 갖는, 사람들의 고난에 대한 연민이라면 그건 물론 승려들 속에도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소년시절의 그 무작정한 연민심 때문에 한때 사회주의에도 감염되었다가 탈피해서 니이체와 그리이스 신화의 신성에도 상당히 또 젖어 있었던 나로서는 그리이스 신화적 그 육감과 혈기라는 것은 여간한 매력이 아니었다.” 『나의 文學的 自敍傳』(民音社, 1977, 10쪽.)
공덕동 살구나무 집에서 장남과 함께 찍은 사진과(1950, 왼쪽) 재개발 직전의 집 모습(1992, 아래)
미당이 작고하기 전까지 살았던, 봉산산당
봉산산당에서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왼쪽)과
김동리 선생과 함께 한 사진(오른쪽)
2. 미당의 작품 길라잡이
미당시의 불가적 측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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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