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어문,종교,불교] 삼국유사의 편찬배경,삼국사기와 비교, 체제,해석방법 고찰

등록일 2002.06.30 한글 (hwp) | 33페이지 | 가격 1,000원

소개글

- 이해를 돕기위해 10개의 그림과 8개의 도표활용
* 그림: 일연의 생에,민족공동체 의식형성,몽고침략에 대한
관념적 극복방법,삼국유사 구성,조목구성, 신라의
흥망 성쇠,삼국유사의 판본 계통도
* 도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비교,향가내역 등
lbk77678@hanmil.com

목차

1 서문
2 일연의 생애와 역사관
2-1 편찬자 일연의 생애
2-2 편찬 배경과 일연의 역사관
- 일연 당시의 역사상황
- 편찬동기
- 삼국사기와 비교
3 삼국유사의 체제와 해석
3-1 체재:전체의 구조,조목의 구성.
3-2 삼국유사의 해석방법(예)
- 설화상징의 해석(예)
- 찬시의 구성과 해석
- 향가의 구성과 해석
4 삼국유사의 간행, 유통 및 소장
5 삼국유사에 관련된 자료:인용서적,지명변천,신라의 척도

본문내용

<삼국유사의 해석 방법 중에서>
경덕왕 설화 원형:리더쉽 즉 이상적인 지도자상
…상략… 경덕왕은 옥경(玉莖)의 길이가 여덟치였다. 아들이 없어 왕비를 폐하고 사량부인에 봉했다. 후비 만월부인의 시호는 경수태후이니 의층 각간의 딸이었다. …하략…

삼국유사에서는 왕의 성기에 관한 언급은 기이편 경덕왕조의 '경덕왕은 옥경의 길이가 여덟치였다'와 지철로왕조에 '왕은 음경의 길이가 1자 5치나 되 배필을 구하기 어려웠다.'의 두 곳이다. 일반적으로 남성의 성기크기는 낮은 차원에서는 남성의 물리적 힘을 높은 차원에서는 권력지향적인 추진력을 상징한다.

이를테면 지철로왕은 음경의 길이가 1자 5치(약30㎝)나 되었다고 하는 것은 전제왕권을 강화했다는 의미이다. 신라는 내물왕 이후 고구려의 정치적 간섭을 벗어나면서 왕권의 강화과정을 걷게 된바 이러한 전환은 지증왕으로부터 시작하였다고 불 수 있다. 즉 지증왕 때 부자 상속제가 확립되고 왕비족(박씨)이 존재하여 왕통의 권위를 높였다. 이때를 전후하여 마립간의 칭호를 대신하여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신라를 국호로 삼았다. 또 군현제의 실시와 군주의 임명도 이 때에 이루어졌다. 이러한 일련의 왕권강화 정책을 일연은 지철로왕의 음경크기로 기술했다.

경덕왕의 옥경길이가 8치(약16㎝)라는 것은 그 길이가 평균치보다 커서 권력지향적 왕권강화정책을 실시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경덕왕은 중국의 중앙집권 체제를 도입한 후 관료조직을 통제할 수 있도록 중앙에는 시중과 정찰관을 두고 지방에는 검찰제도를 실시했다. 또 불교의 권위에 의지하여 군주의 권위를 과시하기도 하였다. 삼화령에서 미륵세존에게 차를 공양하고 돌아가는 충담사가 경덕왕에게 미륵에 공양한 향차를 진상하였다. 이는 왕이 위엄을 보이고자 당시 풍미하던 정토신앙의 미륵과 경덕왕을 동일시 한 것을 나타낸 것이다. 충담사는 경덕왕을 위해 향가인 안민가를 지어 바쳤다. 안민가는 군주에 대한 가부장적 전제와 그에 대한 피지배자의 순종을 바탕으로 하는 유교주의적 통치 이념을 수용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경덕왕의 전제권 강화정책은 율령제의 확충에 따른 전면적인 통치체제의 강화와 불교에 의지한 왕의 권위강화 그리고 유교주의의 정치이념의 접근으로 나타났다.

'옥경의 길이가 여덟 치였으나 아들이 없다.'는 것은 경덕왕의 왕권강화 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패의 대표적인 정책은 녹읍제(祿邑制)의 부활이다. 녹읍이란 식읍(食邑)과 같이 귀족에게 일정한 지역을 주어 그 지역에서 세금과 부역을 받는 제도를 말한다. 귀족들의 세력을 억제하기 위해 실시되던 월급개념의 관료전(官僚田) 대신 녹읍제를 부활한 것은 왕권에 대한 귀족들의 승리를 뜻한다. 경덕왕 때인 '월명사 도솔가'조에서 왕을 상징하는 해가 둘 나타나 10여일 간 없어지지 않았다고 하는 의미도 왕과 대등한 귀족세력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즉 왕권강화정책 은 실패<font color=aaaaff>..</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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