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서당 ( 시적에서와 실제적에서의 비교 )
- 최초 등록일
- 2011.02.28
- 최종 저작일
- 20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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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건축사 과목 기말 레폿으로 냈던 과제물입니다.
A+ 받았었고, 논문 스타일로 작성하라는 교수님 지시에 따라 썼던 자료입니다.
도산서원의 시초인 도산서당을 퇴계이황의 시에서 등장하는 것을 먼저 분석하고,
또 실제적으로 어떠한 결점이 있는지를 분석하여, 도산서당의 이원적인 면에 대해서 조사하고 분석했습니다.
비교분석하는 자료 또는 문학적인 면에서 건축물을 분석하고자 하거나,
도산서당의 결점에 대해 분석 하고자 하는 분들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목차
1. 서론 : 퇴계와 도산서당과의 관계
2. 본론 : 시적존재와 실제적 존재에서의 비교
- 도산 서당에 대한 설명
- 퇴계의 시적 주인공 도산서당
- 도산서당의 실제적인 결점
- 시적존재와 실제적 존재에서의 비교
3. 결론 : 도산서당 감상 관점
본문내용
●●● 퇴계의 시와 도산서당과의 관계 ●●●
퇴계 이황이 도산서당에서 시를 읊고 후진 양성에 힘을 쓰며 자기 자신의 학문을 탐구하던 시기는 그의 나이 43세(1543~1549)였다. 그 전까지 순탄하게 벼슬을 하던 퇴계가 관직을 관두고 귀향을 하려고 했던 것은 조정의 당쟁과 분란 때문이었다. 이부터 52세까지 퇴계는 귀향과 벼슬을 반복하였다. 정병헌·이지영, 『고전문학의 향기를 찾아서』 , 돌베개 , 2000
그의 고향인 토계에 계상서당을 지어 본격적인 학문 연구를 시작하면서, 그의 곁에는 제자들이 모여 들었고, 그에 따라 계상서당이 비좁아 짐으로 인해서 추가적으로 후진 양성을 위해 도산 서당을 지은 것이다.
퇴계 나이 60세에 도산서당을 세우고 모두 48수에 도산잡영을 지었으며, 그것에 대한 기문을 61세에 붙였다. 퇴계는 그의 시에서 도산 서당은 자연물을 의인화 하여 모든 주위의 경관과 현상들을 자기와 친근하게 생각하였으며, 서당 또한 이 세상 어디에서 견줄 수 없는 좋은 곳이라 묘사 하였다.
삼간당의 격식을 갖춘 구조의 도산서당은 퇴계의 몸가짐과 유사하게 매우 검소한 형식이지만 모든 것이 갖추어진 구조를 지니고 있다. 모든 것은 갖추고 있다고는 하나, 실제적인 생활은 과연 어떠하였을까?
이 글에서는 시적에서의 존재와 실제적 존재에서의 차이점을 알아보려고 한다.
●●● 시적존재와 실제적 존재에서의 비교 ●●●
● 도산 서당에 대한 설명
이황이 풍수 군수직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온 것은 1549년 11월이고, 도산 서당을 지은 것은 1561년이다. 고향 집 근처에 2칸짜리 작은 초당인 계상 서당을 지어 독서에 열중하면서 제자들을 가르 켰으나 서당이 제자들과 함께 지내기에는 옹색하여 새로운 서당의 필요성으로 새로운 서당 건축을 결정하게 된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