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상계] 호락논쟁이나 조선후기의 사상의 변화양상

등록일 2002.06.26 한글 (hwp) | 2페이지 | 가격 700원

소개글

조선사상계 호락논쟁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호락논쟁은 숙종 34년(1708) 주자주의 해석이 발단이 되어 권상하 문하의 남당 한원진(1682~1751)과 위암 이간(1677~1727) 사이에 벌어진 논쟁으로 그 이후 호서지방의 권상하 계통 학자들과 경락(京洛 서울주변) 간의 김창협 김창흡계 학자들 사이의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전자의 호론쪽에서는 남당 한원진과 병계 윤봉구(1681~1767) 및 그 문도, 후자의 낙론쪽에서는 김창흡과 기원 어유봉(1672~ 1744), 도암 이재(1680~1746), 여호 박필주(1665~1748), 미호 김원행(1702~1772) 및 그 문도가 중심이 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율곡계의 학자들로서 퇴계 이후의 영남학파에 비한다면 주기적 경향을 띠고 있었지만, 그 논리 전개과정에서 호론은 주기적 경향에 보다 충실한 반면 낙론은 오히려 주리적 경향을 가미하고 있었다.
매산 홍직필(1776~1852)이 요령있게 요약하고 있듯이, 이들 논쟁의 주쟁점은 [인물성동부동(人物性同不同)]·[미발심체본선유선악(未發心體本善有善惡)]·[명덕분수유무(明德分殊有無)]에 대한 논의로 나타났다.
먼저 [심체본선 유선악]으로 요약된 [성범심동부동론(聖凡心同不同論)]의 경우, 호론에서는 이통기국(理通氣局) 중에서 기국(氣局)을 강조하는 견지에서 미발심체(未發心體)의 순선(純善)을 부인하고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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