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신앙독립을 꿈꾼 김교신
- 최초 등록일
- 2011.02.14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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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연세대학교 리포트 자료입니다.
목차
1. 들어가는 말
2. 김교신에 대한 이해
3. 순수한 신앙을 찾기위한 김교신의 노력
1) 순수 신앙을 잃어버린 한국교회
2) 위기의 시기에 김교신의 역할
4. 한국교회에 필요한 순수한 성서적 신앙
5. 나가는 말
본문내용
3. 순수한 신앙을 찾기 위한 김교신의 노력
1) 순수 신앙을 잃어버린 한국교회
김교신이 태어나서 살다간 일제 강점기의 한국 교회는 아직 뿌리도 내리기 전에 겨울을 맞이한 여린 나무처럼 혹독한 시련기였다. 일제의 강점하에 나라 잃은 민중의 가련한 처지는 원치 않는 황국신민으로 침략전쟁의 희생양이 되었고, 당시의 주류 교회였던 장로교회와 감리교회는 1930년대로 접어들면서 황국신민화를 위한 신사참배의 시험대를 넘지 못하고, 결국 1938년 4월을 기해 일제히 굴복하고 말았다. 위광원, “1930년대 기성교회와 김교신의 갈등 내용 연구”, (서울: 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2007), 5.
김교신이 일본에서 돌아왔던 1920년대 후반의 한국 교회의 시대 인식의 유형은 이미 정도를 벗어나 있었다.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해야 했던 제도권의 교회들은 현실 참여보다는 길선주가 주도하는 말세론적 유형으로, 이용도가 주도하는 신비주의적 유형으로 양분되었다. 전자는 내세를 지향하면서도 세속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는 반면에 후자는 현세를 지향하면서 동시에 세속적 가치를 부정하는 상반된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제도권의 주류 교회들이 선교사들의 영향 아래서 펼치던 계몽운동 보다 심령의 대 부흥을 주도했던 이들의 부흥회가 민중들에게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은 두 유형 모두 고통당하고 있는 식민지 백성들에게 현실을 감내할 수 있는 이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참고 자료
김명곤, “김교신이 그리운 시절”, 미주뉴스앤조이, 2008
김윤정, “김교신의 교회에 대한 인식”, 서울:연세대학교대학원, 2007
김정환, “김교신:그 삶과 믿음과 소망”, 서울:한국신학연구소, 1994
박신배, “태극신학과 한국문화”, 서울: 동연출판사, 2009
서정민, “새로운 조선을 성서위에 새우라”, 서울:한국기독교연구소 세계의신학 제32호, 1996
양우석, “김교신의 평신도운동 연구”, 서울: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 2009
위광원, “1930년대 기성교회와 김교신의 갈등 내용 연구”, 서울:베뢰아국제대학원대학교,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