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선 태종의 정치

등록일 2002.06.21 한글 (hwp) | 6페이지 | 무료

목차

1.태종의 즉위 과정
2.태종의 개혁정치
가.왕권 강화를 위한 노력
나.중앙제도의 정비
다.군사제도의 정비와 국방
라.토지 조세제도 정비
마.적극적인 해외 진출
바.수도의 정비

본문내용

1. 태종의 즉위 과정
태종은 1367(공민왕 16)∼1422(세종 4). 조선왕조의 제3대 왕이며, 이름은 이방원(李芳遠),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다섯째 아들이다. 그는 태조의 여러 아들들 가운데서도 특히 용맹하고 영특하여 정몽주(鄭夢周) 제거하는 등 태조가 군왕으로 즉위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본래 무인적인 기질이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을 좋아하여 군중에서도 창을 놓고 쉴 때면 유자(儒者)를 청하여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강론하였다고 한다.

방원은 태조의 여러 왕자 가운데 개국에 가장 공로가 크고 야심과 자질이 큰 인물이었으나 태조 즉위 이후에는 이 점이 오히려 유신(儒臣) 중심의 집권체제를 강화하려는 정도전(鄭道傳) 등의 경계와 견제를 받아 양자 사이에는 긴장이 조성되었다. 특히 태조 3년 이후 병권(兵權)이 정도전에게 넘어가고 사병(私兵)마저 혁파될 위기에 놓이자 그는 마지막 반격을 시도하여 정도전 등 개국공신(開國功臣)들과 세자로 책봉된 방석(芳碩)을 살해하는 '왕자(王子)의 난(亂)'을 일으켜 실권을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정변 직후에는 여러 사정을 감안하여 세자로의 추대를 사양하였으며, 단지 정안공(靖安公)으로 개봉되면서 의흥삼군부우군절제사와 판상서사사(判尙瑞司事)를 겸하였다. 또한 정사공신(定社功臣)을 논정하여 1등이 되었고, 이어 개국공신 1등에도 추록되었다.

1399년(정종 1)에 새로 설치된 조례상정도감판사(條例詳定都監判事)가 되었으며, 강원도 동북면의 군사를 분령(分領)하였다. 1400년 방간(芳幹)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박포(朴苞) 등이 주동이 된 제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한 뒤 세자로 책봉되면서 내외의 군사를 통괄하게 되었다.

세자로 책봉되자 병권장악·중앙집권을 위하여 사병을 혁파하고 내외의 군사를 삼군부로 집중시켰으며,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고치어 정무를 담당하게 하고 중추원을 삼군부로 고치면서 군정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이어 1400년 11월에 정종의 양위를 받아 등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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