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정조의 탕평책
- 최초 등록일
- 2011.01.12
- 최종 저작일
- 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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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사 개관 시간에 제출했던 레포트 입니다.
목차
영조와 정조의 탕평 정치
1. 영조의 문물정비
1) 영조의 완론탕평
2) 영조의 정치개혁
3) 영조의 문물정비
2. 정조의 문물정비
1) 정조의 정치성격
2) 정조의 준론탕평
본문내용
탕평 정치는 영조 때 자리 잡았다. 영조는 왕과 신하 사이의 의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며, 붕당을 없애자는 논리에 동의하는 탕평파를 중심으로 정국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붕당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하여 공론의 주재자로서 인식되던 산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의 본거지인 서원을 대폭 정리하였다. 아울러 이조 전랑의 권한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그들이 자신의 후임자를 천거하고, 3사의 관리를 선발할 수 있게 해 주던 관행을 없앴다. 그러나 이조 전랑의 후임자 천거권은 이후 정조대에 가서야 완전히 폐지되었다.
영조가 탕평정치를 실시하면서 왕은 정국의 운영이나 이념적 지도력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부문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고, 붕당의 정치적 의미는 차츰 엷어졌다.
정국이 안정되자, 영조는 민생 안정과 산업 진흥을 위한 개혁을 추진하였다. 군역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하여 균역법을 시행하였고(1750), 가혹하나 형벌을 폐지하고 사형수에 대한 삼심제를 엄격하게 시행하였다. 속대전을 편찬하여 법전 체계도 정리하............................
1. 영조의 문물정비
1) 영조의 완론탕평
노론과 소론 사이의 치열한 정쟁 속에 즉위한 영조는 붕당의 대립 자체를 완화, 해소하는 것을 왕정의 큰 과제로 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즉위와 동시에 탕평교서를 발표하고 신임옥사를 일으킨 소론 과격파를 축출, 노론을 불러들이는 조치를 내렸다(을사처분). 그러나 노론 내 강경파인 준론자들이 소론에 대한 공격을 일삼자 1727년에 이들을 축출하였다. 이 무렵 그는 붕당이 아니라 국왕이 명실상부하게 정국을 주도하여야 요·순의 시대처럼 탕탕평평의 치세가 실현될 수 있다는 왕정관을 명백히 표시하면서 이에 따르는 자들만을 등용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729년에는 노론·소론 가운데 자신의 탕평책을 따르는 온건파, 즉 완론자들을 고르게 등용하여 정국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기유처분).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