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릴열도에 대해서
- 최초 등록일
- 2011.01.10
- 최종 저작일
- 199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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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1
목차
1. 쿠릴 열도의 간략한 개요
2. 쿠릴 열도는 어떤 곳인가
3. 쿠릴 열도 분쟁
4. 쿠릴 열도에 살던 원주민은 누구인가?
5. 쿠릴 열도 분쟁은 왜 시작되었는가?
6. 쿠릴 열도를 둘러싼 치열한 분쟁
7. 쿠릴 열도 분쟁 해결의 노력 (1)
8. 2000년대 쿠릴 열도 분쟁의 상황
9. 쿠릴 열도의 의미와 영향
본문내용
1. 쿠릴 열도의 간략한 개요
- 러시아 동부 사할린주에 속한 열도로 캄차카 반도와 일본의 홋카이도 사이에 56개의 섬과 바위섬들이 줄지어 분포하고 있다.
2. 쿠릴 열도는 어떤 곳인가
- 쿠릴 열도는 태평양과 오호츠크해를 나누는 경계를 이룬다. 러시아 사할린주에 속하며 일본 이름으로는 ‘치시마`라고 한다.
- 판의 활동으로 쿠릴 열도에는 100개의 화산이 있으며 그 중 35개의 화산이 활화산이다. 해안은 바닷말, 바닷물고기와 해달의 서식지이다.
-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벨라루스인, 타타르인, 한민족(사할린 한민족), 니브히족, 오로첸족, 아이누족 3만여 명이 살고 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절반 정도가 빈민층이다.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 황철광, 유황 등의 자원이 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3. 쿠릴 열도 분쟁
- 쿠릴열도 분쟁은 일본의 홋카이도와 러시아의 캄차카 반도를 잇는 쿠릴열도 20개 도서 중 최남단의 2개 섬(에토로프, 쿠나시리)와 홋카이도 북쪽의 2개 섬(하보마이, 시코탄)에 대한 일본과 러시아간의 영토분쟁이다.
4. 쿠릴 열도에 살던 원주민은 누구인가?
- 쿠릴 열도의 원주민은 아이누이며 18세기까지 아이누인들은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쿠릴 열도와 사할린 등지에 널리 분포하며, 헤이룽강 유역, 캄차카 반도까지 교역을 하고 있었다. 그 밖에 니브히 등의 북방 소수민족도 이 지역에서 어업과 수렵 등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5. 쿠릴 열도 분쟁은 왜 시작되었는가?
- 처음에는 아이누족을 18세기와 19세기에 러시아인과 일본인이 탐사하기 시작했다.1875년 일·러 쿠릴·사할린교환조약 체결시에는 당시 양국이 공동관리하던 사할린을 러시아에 양도하고, 그 대신 일본은 쿠릴열도 전체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후 사할린 남부지역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쿠릴 열도는 러시아에 반환되었지만 일본은 쿠릴 열도 가장 남쪽의 네 개 섬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 1956년 일·소 공동선언 당시 소련이 “평화조약 체결 후 쿠나시르와 이투루프를 제외한 나머지 2개 섬을 돌려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일본은 “4개를 모두 돌려받아야 한다”며 거부했다. 이후 일 정부는 줄기차게 쿠릴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6. 쿠릴 열도를 둘러싼 치열한 분쟁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