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
- 최초 등록일
- 2011.01.08
- 최종 저작일
- 20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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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10년대 토지 조사산업에 대하여 논하라. 는 주제로 만들어진 레포트 입니다.
목차
1. 서론
2. 토지조사사업의 배경과 목적
3. 토지조사사업의 과정과 내용
1) 통감부의 기초사업
2) 조선총독부의 토지조사사업
3) 지주권 인정과 소유권 분쟁
(토지조사사업의 모순)
4. 한국사회경제의 변화
(토지조사사업의 결과)
5. 토지조사사업의 현대적 쟁점
본문내용
1. 서론
토지조사사업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 18년까지 일제가 한국의 식민지적 토지소유관계를 확립하기 위하여 시행한 대규모의 조사사업이다. 이를 통해 일제는 식민지통치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이러한 결과로 토지조사사업은 식민지 경제구조 창출의 핵심으로 평가되고 있다.
조선의 역사와 경제 나아가 한국의 역사와 경제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일제강점기의 핵심적인 침략적 사업인 토지조사사업의 실시 배경과 목적을 살핌으로써 사업의 내용과 과정을 알아보고 그에 따른 결과로 사업이 한국의 역사와 경제에 미친 영향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리고 근대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수탈론(식민지 근대론)과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논의도 살펴 토지조사사업이 오늘날의 역사에 어떠한 의미로 부각되고 있는지 밝히고자 한다.
2. 토지조사사업의 배경과 목적
토지제도는 호구제도와 함께 국가통치의 근간을 형성한다. 근대국가의 성립과 같은 국가형태의 전환과정에 있어서는 토지와 인민의 장악 여하가 통치의 성패를 좌우한다. 제국주의의 식민지 통치에서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1868년 명치유신(明治維新)이후 근대국가를 수립하고 영토확장을 꾀한다. 북쪽으로는 아이누 소수종족이 거주하는 북해도(北海道)의 개척에 나서고, 남쪽으로는 1879년 류우큐우왕국을 영토로 편입하여 거기에 오키나와현을 설치하였다. 청일전쟁의 결과 대만을 식민지로 삼고, 러일전쟁의 결과 관동주와 남 사할린을 차지하고 1906년 조선을 보호국화 한 뒤 1910년 식민지로 삼았으며, 제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남태평양의 독일령을 점령한 뒤 이를 남양군도(南洋群島)로 묶어 통치하였다. 여기까지 일차적으로 일본제국은 형성되었다.
일본은 근대국가로 성장하면서 본토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한 것은 물론이고, 이후 제국의 형성과 팽창과정에서 확보한 새로운 영토에 대하여도 대부분 토지조사 및 토지개혁을 단행하였다.
참고 자료
1. 논문 :
「조선 `토지조사사업` 연구서설」, 『한국근대경제사 연구』, 사계절, 1983
정덕기,「일제의 토지조사와 농지수탈」, 『한국근대 농정사 연구』, 형설출판사, 1982
이영호, 「일본제국의 식민지 토지조사사업에 대한 비교사적 검토」,『역사와 현실』, 2003
전상인, 「한국의 식민지 근대」, 『전통과 현대』10호, 1999
2. 서적 :
조기준, 『한국 경제사 신강』, 일신사, 1994
조기준, 『한국자본주의 성립사론』, 19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