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조경사-정읍 김동수댁, 정읍 무성서원, 담양 소쇄원 답사
- 최초 등록일
- 2010.12.26
- 최종 저작일
- 2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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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조경사-정읍 김동수댁, 정읍 무성서원, 담양 소쇄원 답사
목차
1. 정읍 김동수 댁
2. 정읍 무성서원
3. 담양 소쇄원
본문내용
진입로의 숲은 길게 늘어선 수십 그루의 느티나무 비보숲과 연결되어 넓은 들판과 살림집의 경계요소가 됨.바깥마당을 낀 행랑채 솟을대문에 들어서면 중문마당이 자리하는데, 화오를 두어 향나무와 능소화, 초화류를 가꿈.사랑마당에는 담장을 따라 동쪽과 서쪽에 화오를 두어 운치있는 향나무와 석류, 철쭉, 영산홍 등을 가꿈.중문에서 안행랑채를 거쳐 안마당으로 들어가도록 함→중문과 안채 그리고 사랑채 마당에는 연결통로에 디딤돌을 가지런히 놓았음
<중 략>
원래 최치원을 제향하기 위한 태산사였으나, 1696년(숙종 22)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인 무성서원이 됨. 태산사는 1484년(성종 15) 최치원을 제사지낸 유상대 위의 선현사를 이건한 것으로, 1544년(중종 39) 신잠을 같이 모셨고, 이어서 정극인(丁克仁)·송세림(宋世琳)·정언충(鄭彦忠)·김약묵(金若默)·김관(金灌) 등을 함께 모심. 현재의 건물은 1844년(헌종 10) 중수한 것이며, 명륜당은 1825년(순조 25)에 불탄 것을 1828년에 중건 특히 여기에는 1486년 이후의 봉심안(奉審案)·강안(講案)·심원록(尋院錄)·원생록(院生錄)·원규(院規) 등 중요한 서원 연구자료가 있음. 홍살문 무성서원으로 들어가는 길에 무성서원교를 지나면 홍살문이 나옴
<중 략>
작정자 양산보(1503~1557년)는 자가 언진이면, 호는 소쇄공이다.정원의 조영과 관련해서 볼 때 소쇄공의 일생은 크게 세 기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음.상경전의 유년시절(1503~1516년)은 소쇄원에 인접한 지석동에 살면서 소쇄원이 자리할 동폭을 자주 찾아 놀며 정원 조성의 뜻을 갖게 됨.1516년 1517년까지는 상경하여 조광조의 문하에서 수학을 하고, 중종 14년(1519년) 근정전 친시에 응시하여 1차는 급제하였으나, 최종에 가서 낙방하게 됨.바로 이 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당시의 정치 사회상에 대해 깊이 실망하고 낙향하여 평생 동안 은일 생활을 결심하게 되며 소쇄원 조영 시장.1520년부터 1557년까지는 낙향은일기이다. 그의 20대(1520~1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