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학자] 한국사상사 - 백남운

등록일 2002.06.18 한글 (hwp) | 7페이지 | 가격 700원

목차

목차

1. 들어가며

2. 시대적 배경

3. 백남운의 사상과 활동

1) 맑스주의 수용과 학문관의 형성

2) 한국사인식-조선경제사의 체계화

① 사적 유물론에 대한 인식.

②식민주의 역사학과 민족주의 역사학 비판

4. 마치며


본문내용

백남운은 그의 발전사관을 바탕으로 하여 일제의 식민사관에 대항하였으며 부르주아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인식도 함께 비판하였다. 그의 역사인식은 당시에 대두하였던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론의 하나인 토지국유제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 그가 작업하였던 사적 유물론의 영역은 맑스주의 내부에서도 채 정립되지 못한 영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민족의 주체성을 특수성으로 하여 보편적인 역사 발전에 한민족도 따르고 있음을 증명하려 한 그의 작업은 식민지 시기 당시 하나의 투쟁 방법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업들을 통하여 맑스주의의 사적 유물론이 조선의 역사에 맞추어 처음으로 서술되었으며 경제학의 방법에 있어서도 주류 경제학인 부르주아 경제학 뿐 아니라 맑스주의에 입각한 경제학이 도입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백남운은 해방 이후에는 조선 내의 공산당으로써 활동하였으며 월북한 후 북한에서 많은 활동을 벌였으므로 그의 해방 후의 활동을 살펴보고 해방 후에 내세운 연합성 신민주주의론도 다루어야 할 것이나 그의 해방 후의 활동은 그가 가지고 있는 역사인식으로부터 나왔을 것으로 생각되므로 일제 하 그의 역사 인식과 활동을 살펴봄으로써 향후 그가 나아가고자 했던 방향을 짐작하는 수준에서 머물렀다.
당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해방 후 남한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한 바 있듯이 독립 운동의 한가지 방편이었던 만큼 민중의 지지를 상당부분 가지고 있었던 사상이었다.
그의 사상은 7, 80년대 운동권 내에서 비밀리에 학습되었던 주체사상은 아니다. 그의 사상은 원래의 맑스사상에 가까운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주체사상을 한민족의 특성에 맞추어 변형시킨 맑스사상이라고 하여 추앙하기도 한다. 백남운의 사상은 한국사회의 특성에 맞추어 변형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처럼 민족의 특수성을 내세워 한 사람의 독재를 승인하고 우상화하는 사상은 아니다. 그는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과 연합하고자 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연합민주정권이라 하여 연합의 과정을 내세웠는데 이는 중도좌파의 정치노선과 광범한 진보적 지식인들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었다. 즉 그의 이론은 민족문제의 중요성을 제시하고 좌우합작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사상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적 측면은 그를 개량적이며 타협적인 지식인이었다고 비판할 수 있는 소지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민족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새로운 사회건설을 꾀하고자 했던 그만의 역사인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의 역사인식 속에서는 은연중에 일본의 식민사관이 숨어져 있다. 일본의 교과서 파동이 쟁점이 되고 있는 이 시기에 사적 유물론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그들의 역사관을 벗어나고자 했던 백남운의 실천적 노력과 활동은 눈여겨볼 만한 일이다.

참고 자료

방기중,『한국근현대 사상사연구』, 역사비평사, 1992.
강만길 외,『한국사 15 민족해방운동의 전개-1』, 한길사, 1994.
백남운,『朝鮮社會經濟史』, 이론과 실천사,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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