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 소수서원에 관하여
- 최초 등록일
- 2010.12.20
- 최종 저작일
- 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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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사학] 소수서원에 관하여
목차
1. 소수서원 입구 (진입 영역)
2. 소수서원 강학영역
3. 소수서원 제향영역
4. 기타 건물들
참고 자료
본문내용
순흥의 역사
순흥은 비록 현재는 영주시에 속한 작은 면에 불과하지만 고구려 시기에는 급벌산군(及伐山郡), 신라 경덕왕 때는 급산군(山郡)이라는 ‘군’이었으며, 고려 초에는 흥주(興州)라는 ‘주’로, 조선 태종 때는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457년(세조3) 순흥에 유배돼 있던 세종의 여섯째 왕자 금성대군(錦城大君)이 순흥 부사 이보흠(李甫欽)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실패함으로써 도호부가 폐지되어 풍기군(豊基郡)과 영천군(榮川郡), 봉화현(奉化縣)에 각각 나뉘어 예속되고 말았다.
소수서원의 역사
서원이란? 조선 중기 이후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으로 유교의 성현에게 제사지내는 제향(祭享)과 교육을
통한 인재의 양성이라는 두 가지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다.
소수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 최초의 사액 서원으로 1543년(중종38), 당시 풍기군수였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의 유학자 안향(安珦)을 기리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세운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그 시초로 하고 있다. 1544년(중종39)에는 안향의 후손인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추가로 배향(配享) 배향 : 학덕이 있는 사람의 신주를 문묘나 사당, 서원 등에 모시는 일
하였고 1546년(명종1)에는 또한 안향의 후손인 안현(安玹)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서원의 관리 지침인 <사문입의(斯文立議) 사문입의(斯文立議)는 지방관과 영주지역 사림이 소수서원의 제반운영에 대하여 논의하여 그 시행안을 세운 것으로 일종의 운영지침.
>를 마련하여 서원의 원장 임명 문제, 원생의 정원, 제향 절차와 토지, 서적, 노비, 유생들의 관리 등 서원 운영에 필요한 여러 가지 기반을 닦았으며 1548년(명종3)에 이황(李滉)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조정에 소수서원의 사액(賜額) 사액(賜額)이란 임금이 사당(祠堂), 서원(書院), 누문(樓門) 등(等)에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이르는 말로 보통 사액을 받게 되면 토지세의 면제나 노비의 면역 특권 등이 주어진다.
을 청하는 글을 올림으로써 마침내 나라의 공인을 받은 서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1550년에는 명종이 친필로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편액 편액이란 건물이나 문루 중앙
참고 자료
한상규 (2009), 한국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
영남문헌연구소, 『소수서원지』,소수서원, 2007
이호일, 『조선의 서원』, 가람기획, 2006
사이버소수서원 http://www.cyberdyu.or.kr/sosu/sosu.htm
순흥문화유적권 http://www.seonbicho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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