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실크로드
- 최초 등록일
- 2010.12.15
- 최종 저작일
- 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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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실크로드
목차
프롤로그
중국, 해상 실크로드의 진원지
-아시아의 진주, 홍콩과 상해
-동남아․인도의 바닷길이 열리다
-바닷길의 부상과 오아시스 루트의 쇠퇴
-해상교류의 전성시대를 맞이하다
-추락하는 중화제국
-서세동점의 시대를 맞는 중국
-세계경제의 중심에 서다
16-17세기 호이 안과 베트남의 대외무역
-호이 안
-역사 속에 등장한 무역항
-호이 안과 일본의 무역
-호이 안과 서양 및 주변 동남아 제국과의 관계
-호이 안과 조선
-호이 안의 오늘
말라카 왕국, 해상 실크로드의 동아시아 무역 거점
-유서깊은 도시, 말라카
-해양왕국을 건설하다
-국제적인 항구도시로 발전하다
-말라카 왕국의 구조와 국제교역
-말라카 해양왕국의 오늘
본문내용
◉남북 분열기의 바닷길
420년 전후를 기점으로 쇠퇴했던 바닷길이 다시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이는 晉 이후로 화북에 자리 잡은 북방민족의 지속적인 번영과 한인이 선비족의 北魏와 5세기 중엽 벌인 전투에서 패한 것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영토회복을 꿈꾸던 남부의 한인들은 이로 인해 남북 분열을 인정하고 남중국 경영을 본격화 하였다. 이 때 육로를 통한 교역은 북조에 의해 차단되었으므로 바닷길이 다시 흥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과 활발한 교역관계를 유지한 나라는 부남․참파였으며 교역 물품은 향목, 상아, 바다거북/홍보석, 녹보석, 산호, 유리 등이었다. 전자는 동아시아의 토산품, 후자는 인도산으로 중계된 것으로 추정된다. 남북조 시대 불교의 발전은 바닷길을 통한 교역에 큰 영향을 주었다. 불교가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사치품 중심의 바닷길 교역이 불교에 쓰이는 의례용 도구들도 포함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는 인도차이나 반도에 한정되어 있던 교역이 점차 확대되었는데 여러 나라들이 중국과의 해상교류가 부를 안겨주었기 때문에 종속국을 자처하며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바닷길의 부상과 오아시스 루트의 쇠퇴
◉수․당 제국 초기의 대외교역
589년 隋(589~618)가 중국을 통일한다. 수를 세운 隋文帝 楊堅은 내치에 중점을 두고, 검소함을 강조하였고, 전통 오아시스 루트를 교역로로 삼았기 때문에 바닷길은 침체되었다. 뒤이어 즉위한 煬帝는 문제와는 달리 적극적 대외정책을 표방하였고 남해 사치품에 대한 관심이 바닷길 활성화를 촉진했다. 수왕조를 대체한 唐(618~907)은 세계 제국적 성격을 가진 국가였다. 육상 교역로는 소그드인이 중심이 되어 번영하였고, 당나라 내에는 외국인 거주자가 많았고 다양한 종교가 성행했다. 바닷길 역시 번영하였는데 스리위자야가 중심이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