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북벌론과 북학론
- 최초 등록일
- 2002.06.15
- 최종 저작일
- 20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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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북벌론
북학론과 북학운동
북학파
북벌론과 북학론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나의 생각
본문내용
북벌론
조선시대 효종 연간과 숙종 초년에 청나라를 치기 위한 일련의 논의를 북벌론이라고 한다.
인조반정 이후 집권한 서인세력은 처음에는 기미책을 통해 후금과 현상을 유지하는 정책을 취하였으나, 인조 14년(1636) 후금이 칭제건원하고 조선에 대해 명과의 국교단절과 신속을 요구하자 이를 거부하고 결국은 병자호란을 맞게 되었다. 국왕이 후금의 왕에게 치욕적인 항복의 예를 행하고, 소현세자·봉림대군 등이 볼모로 끌려간 상황은 조선 조야에 충격과 파문을 몰고 왔다. 북벌은 이러한 배경에서 인조의 뒤를 이어 즉위한 봉림대군(효종)에 의해 계획되었다. 그는 장차의 복수설치를 위한 군비강화를 추진하여 훈련도감의 군액을 증대시키고 어영군과 금군을 정비 개편하였으며, 기마병의 확보에 주력하였다. 군비강화에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양반에게도 군포를 거두려 하였고, 노비 추쇄를 엄격히 하였다. 또 친청파인 김자점 등을 제거하고 송시열·송준길·김집 등을 등용하여 북벌의 이념적 지주로 삼았다. 효종 자신의 북벌에 집념과 의지는 대단한 것이었으나, 당시의 상황은 그의 뜻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결국 1659년 효종이 죽자 북벌론은 무산되었다. 한편 숙종 초에도 윤휴·허적 등 남인을 중심으로 북벌론이 다시 제기되었다. 북벌을 담당할 기구로서 도체찰사부를 두고, 산성을 축조하고 무과 합격자를 늘리고 전차를 제조하는 등 군비를 강화하였다. 이는 1674년 청에서 오삼계의 난이 일어나 내부혼란이 발생한 것을 이용하려 한 것이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