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테너의 역사
- 최초 등록일
- 2010.11.29
- 최종 저작일
- 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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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카운터 테너의 역사는 유럽음악사와 전통 아랍음악의 종교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4장 34절에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 저희의 말하는 것을 허락함이 없나니 율법에 이른 것 같이 오직 복종할 것이요 만일 무엇을 배우려거든 집에서 자기 남편에게 물으니 여자가 교회에서 말하는 것은 부끄러운 것임이라” 라고 한 것에 의해서 중세의 교회에서는 여자들의 교회 안에서의 활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모하메드도 어느 날 한 남자가 노래하는 것을 듣고 젊은 여자들을 현혹시킬 위험이 있으니 크게 노래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이러한 여러 상황이 남성이 남성이 남성들 앞에서 혹은 여성이 여성들 앞에서 노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금까지도 일부에서는 성별이 뚜렷하게 구별되는 연주를 제한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아마도 8세기경부터 가성의 사용이 일반화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연주 상에서 남녀의 구별을 뛰어넘는 유일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서기 822년 술탄 하룬 아르 라쉬드 시대에 당시의 유명한 가수 치럅이 당시 술탄의 지배하에 있었던 코로바도에 와서 그 유명한 가성발성을 전하였고 이 기술은 트르바로드에 의해 다시 널리 퍼져 급기야는 로마 교황청에 근무하는 성악가들에게도 전해졌다. 당시 여성들의 교회 내의 음악활동을 금했던 상황에서는 이 발성법으로 인해 교회 내에서도 양질의 변화있는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이후 1600년 까지 가성이 거의 모든 성악 부문에서 압도적인 추세를 이루다가 사회의 구조와 상황의 변화에 의하여 그 역할은 카스트라토 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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