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통일을 위한 그의 노력
- 최초 등록일
- 2010.11.28
- 최종 저작일
- 20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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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외교사 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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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제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일본이 패망하고, 대한민국이 해방이 되고 정부가 수립되기까지 안팎으로 많은 이해관계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계속되는 미,소 공동위원회의 결렬과 양국가간 냉전체제로 인해 우리나라 내부에서는 남한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세워야 한다는 의견과 단독정부는 민족의 분열을 가져오는 본질적 원인이므로 남한만의 정부 수립은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었다. 남한만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하고 단독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이승만은 1946년 6월 정읍발언을 통해 단독 정부를 주장하였다. 또한 외교론자답게 미국에게 우리나라에 미군이 주둔할 것을 제안했고 남한의 과도 정부를 인정하고 UN 가입을 허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김구는 완강한 반대 의사를 보였다. 1948년 김구는 단선단정은 조국을 분열하고 민족을 멸망케 한다며 반대하였다. 오로지 우리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은 통일 독립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남북협상을 통해 동족끼리 만나 조국의 운명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북 지도자 회의에서 그는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단선단정을 반대하던 김구는 5.10 총선거에 불참하였고 암살로 인해 생을 마감하였다.
이처럼 대한민국이 수립되기까지 쉽지 않은 과정이었고 남북의 분단을 막으려는 김구의 노력이 있었다. 김구가 존경받는 이유는 그가 아무리 남북 지도자 회의에서 아무런 성과 없이 돌아오고, 결국 남한만의 단독정부가 수립되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통일독립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그의 위업이 실로 대단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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